비어서 도리어 채우는, 공망살(空亡煞)
비었고 망한다는 무거운 이름의 살. 그러나 비어 있다는 것은 곧 무엇이든 새로 담을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채움에 앞선 비움, 정화와 새 시작의 자리로 공망을 다시 읽는다.
한눈에
- 한자 뜻 · 빌 공(空), 망할 망(亡). 비어서 없다는 뜻. 별칭 천중살(天中煞)·순공(旬空).
- 어떻게 생기나 · 태어난 날의 간지가 속한 순(旬)에서 짝을 받지 못해 남은 두 지지가, 사주의 다른 자리에 들 때.
- 흔한 오해 · 비고 망하는 살. 들인 노력이 헛되이 새어 나가는 살.
- 다시 읽기 · 채움에 앞선 비움. 묵은 것을 비워 새것을 들이는 정화와 새 시작의 자리.
공망(空亡)은 빌 공에 망할 망이다. 비었고, 없다. 천중살(天中煞)이나 순공(旬空)이라고도 부른다. 이름만 들으면 손에 쥔 것이 자꾸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먼저 든다.
공망은 60갑자의 짜임에서 나온다. 열 개의 천간과 열두 개의 지지가 차례로 짝을 지어 가다 보면, 한 순(旬)이 돌 때마다 천간은 다 쓰였는데 지지 둘이 짝을 못 받고 남는다. 그 짝 없이 남은 두 지지가 공망이다. 태어난 날의 간지가 갑자에서 시작하는 순에 들면 술(戌)과 해(亥)가, 갑술 순이면 신(申)과 유(酉)가, 갑신 순이면 오(午)와 미(未)가, 갑오 순이면 진(辰)과 사(巳)가, 갑진 순이면 인(寅)과 묘(卯)가, 갑인 순이면 자(子)와 축(丑)이 공망이 된다.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정해진 그 빈 글자가 사주의 다른 자리에 들면 그 자리가 공망을 맞는다.
이 살의 통설은 허무하다. 비고 망하니, 들인 노력이 헛되이 새어 나가고, 손에 잡힐 듯하던 것이 끝내 비워진다. 자리가 있어도 빈 자리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라고 보았다. 무언가를 잃는 살이라니, 풀이가 쓸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어 있다는 것을 다르게 보자. 꽉 찬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 없다. 무언가를 새로 담으려면 먼저 비워져 있어야 한다. 공망의 진짜 얼굴이 거기에 있다. 비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 시작할 자리다. 묵은 것을 덜어내는 정화이고, 다음을 들이기 위한 빈자리다. 엔진이 이 살의 순작용을 비움과 정화, 새로운 시작과 재충전으로 짚는 까닭이다. 가진 것이 비워진 자리에서 도리어 욕심을 내려놓고, 세속의 집착에서 한 발 비켜 맑아지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이 비움이 헛헛한 상실로 나올지, 맑은 새 시작으로 나올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운이 나쁜 쪽으로 흐르면 애쓴 것이 자꾸 새어 나가 허무하고, 좋은 쪽으로 흐르면 그 비움이 도리어 가벼움과 자유가 된다. 그 갈림을 정하는 셈은 따로 있지만, 비었다는 말 하나에 먼저 마음을 비울 일은 아니다.
살다 보면 어떤 자리가 자꾸 비워질 때가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손에 쥐었다 싶으면 빠져나간다. 그럴 때 그 자리를 잃는 자리로만 보면 한없이 허하다. 그러나 비어 있기에 늘 무언가를 새로 들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득 찬 사람은 더 받지 못하지만, 비운 사람은 언제든 다시 채운다. 자꾸 비워지는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다음을 들이라고 마련된 자리인지도 모른다.
자꾸 비워지는 어떤 자리가 떠올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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