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이 깨지고 살아날 때, 성격(成格)과 파격(破格)
좋은 격도 무너지고, 무너진 격도 도로 살아난다. 격을 깨는 병과 그것을 고치는 약, 곳간을 여닫는 충을 따라, 타고난 격이 전부가 아님을 읽고 용신으로 건너간다.
한눈에
- 성격·파격이란 · 격이 제대로 살아나면 성격(成格), 무너지면 파격(破格).
- 병과 약 · 격을 무너뜨리는 작용이 병이라면, 그걸 고치는 글자가 약, 곧 구응(救應)이다. 병은 늘 약과 짝.
- 곳간과 충 · 닫힌 곳간은 충이 열쇠가 되어 열고, 이미 열린 곳간은 망치가 되어 부순다. 충 자체엔 길흉이 없다.
- 다시 읽기 · 타고난 격이 전부가 아니다. 깨진 격도 약을 만나, 또는 큰 흐름을 만나 살아난다.
첫 편에서, 좋은 뼈대가 곧 좋은 삶은 아니라고 했다. 튼튼한 골조로도 잘못 지으면 무너지고, 평범한 골조로도 정성껏 지으면 오래 산다고. 그 말의 뒷이야기를 이제 할 차례다. 좋은 격도 무너지고, 무너진 격도 도로 살아난다. 격은 한번 정해지면 끝나는 도장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무엇이다.
격이 제대로 살아난 것을 성격(成格), 무너진 것을 파격(破格)이라 한다. 앞서 본 대로, 순한 격을 잘 받쳐 흘려보내고 센 격을 잘 눌러 다스리면 성격이다. 그게 어긋나면 파격이다. 곱게 흐르던 물길이 막히고, 다스려야 할 거센 기운이 풀려나는 자리다.
옛사람들은 격을 무너뜨리는 흉한 작용을 병(病)에 빗댔다. 그리고 그 병을 고치는 글자를 약, 곧 구응(救應)이라 했다. 가령 나를 바르게 이끄는 정관격에 상관이 끼어들어 그 정관을 치면, 격이 병든다. 이를 상관견관(傷官見官)이라 한다. 그런데 인성이 그 사이에 들어 상관을 눌러 주면, 병은 약을 만나 풀린다. 앞서 인수격에서 본, 편인이 식신을 엎어 버리는 자리도 그렇다. 그 병든 자리에 재가 들어 편인을 제어해 주면 도로 살아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병이 있다고 끝이 아니다. 명리는 늘 병과 약을 짝지어 본다. 병만 보고 겁내는 것은 사주를 절반만 읽은 것이다.
성격과 파격이 가장 극적으로 갈리는 자리가 곳간이다. 진술축미라는 흙의 달은 여러 기운을 한데 갈무리한 곳간이라고, 격 잡는 법에서 잠깐 말했다. 이 곳간은 굳게 닫혀 있어, 충(沖)이 와야 비로소 열린다. 닫힌 곳간에 충이 오면 그 충은 열쇠가 되어 안의 보물을 꺼내 주고, 이미 열린 곳간에 충이 오면 같은 충이 망치가 되어 부순다. 이를 형충개고(刑沖開庫), 충으로 곳간을 연다고 한다. 같은 충이 상황에 따라 열쇠도 되고 망치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충을 무조건 깨짐으로만 읽으면 틀린다. 적천수에는 강약을 먼저 보라는 가르침이 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건드리면, 약한 쪽이 뽑혀 나가고 강한 쪽은 도리어 성나서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잠든 사자를 건드린 격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기운이 내게 약이 되면 길하고, 독이 되면 흉하다. 충 그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무엇이 터져 나오느냐, 그것이 내게 무엇이냐가 길흉을 가른다.
충만 격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합(合)도 격을 바꾼다. 합은 두 글자가 손을 맞잡아 서로를 묶는 것인데, 묶이고 나면 그 글자가 제 역할을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 합거(合去)라 한다. 사주에 꼭 필요한 글자가 다른 글자와 손을 잡아 묶여 버리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제구실을 못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충과 같은 이치가 흐른다. 거슬리던 글자가 묶이면 도리어 길하고, 꼭 필요하던 글자가 묶이면 흉하다. 묶임 그 자체에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묶이느냐가 갈림이다.
말로만 보면 잡히지 않으니, 가상의 사주 한 장을 펴서 직접 짚어 보자. 실제 누구의 것도 아닌, 설명을 위한 사주다.
시 일 월 년
천간 신 갑 을 경
지지 미 인 묘 자
가운데 일간은 갑(甲), 큰 나무다. 그런데 천간을 보면 나를 다스리는 쇠가 둘이다. 년간의 경(庚)은 나를 거칠게 치는 칠살이고, 시간의 신(辛)은 나를 바르게 이끄는 정관이다. 이렇게 정관과 칠살이 함께 섞인 것을 관살혼잡(官殺混雜)이라 한다. 나를 이끄는 손이 둘로 갈려 어지러운, 격의 병이다.
그런데 월간에 을(乙)이 앉아 있다. 이 을이 바로 곁의 경(庚)과 손을 맞잡으니, 거칠던 칠살 경이 그 합에 묶여 물러난다. 앞서 본 합거다. 어지럽히던 칠살이 묶여 나가고, 나를 바르게 이끄는 정관 신(辛) 하나만 깨끗이 남는다. 혼잡이라는 병이, 합거라는 약을 만나 풀린 것이다. 이렇게 둘 중 거친 살을 합으로 거두어 관을 맑게 남기는 것을 합살유관(合殺留官)이라 한다.
병만 보았다면 어지러운 팔자라 했을 자리가, 약까지 보니 도리어 맑게 정리된 자리다. 격을 읽을 때 병과 약을 늘 함께 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반대로, 받쳐 줄 약이 없어 끝내 무너지는 경우도 보자. 이번엔 다른 격이다. 역시 실제 누구의 것도 아닌, 설명을 위한 사주다.
시 일 월 년
천간 기 병 신 계
지지 해 진 유 묘
가운데 일간은 병(丙), 본래 타오르는 불이다. 그런데 태어난 달이 유(酉), 가을로 접어드는 때라 한여름 같던 불기운이 한풀 꺾여 약하다. 월간에 솟은 신(辛)은 병화가 다루는 재물이니, 이 사주의 뼈대는 정재격이다.
약한 불이 기댈 곳은 하나, 년지의 묘(卯) 나무다. 나무는 불을 낳아 주는 인성이라, 쇠약한 병화는 이 묘목에 기대야 비로소 선다. 여기까지는 살길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약한 병화가 자기를 살려 줄 나무를 챙기는 대신, 바로 곁의 재물인 신금과 손을 맞잡아 그 재물 쪽으로 끌려간다. 재를 탐하느라 정작 기댈 인성을 등지는 셈이다. 이를 탐재괴인(貪財壞印), 재를 탐하다 인성을 무너뜨린다 한다. 게다가 시간의 기(己) 흙까지 곁에서 그 약한 불기운을 빨아내니, 격을 받쳐 줄 약이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정재격은 끝내 무너진다. 파격이다.
앞 사주가 병을 약으로 풀어 살아난 자리라면, 이 사주는 그 약이 끝내 없어 무너진 자리다. 격을 가르는 것은 타고난 글자만이 아니라, 그 곁에 병을 고칠 약이 있느냐다.
합과 충이 함께 얽히면 격은 한층 더 살아 움직인다. 부딪치던 충 사이에 합이 들면 그 충이 잠잠해지고, 묶여 있던 합에 충이 들면 그 합이 풀려난다. 한 글자가 묶이고 풀리기를 거듭하며 자리를 옮기는 셈이다. 그 정밀한 판정은 거리와 강약까지 따져야 하는 깊은 영역이라 따로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한 글자가 합에 묶이고 충에 풀리며 살아 움직인다는 그림까지면 된다.
일주론을 읽은 분이라면 여기서 무릎을 칠지 모른다. 일주론에서 만난 묘(墓)나 화개살이 바로 이 곳간의 기운이었다. 갈무리하고 닫아 두는 자리. 그 닫힌 곳간을 여는 열쇠가 충이라는 것을, 이제 이 자리에서 잇는다.
그러니 다시, 타고난 격이 전부가 아니다. 좋은 격도 병들 수 있고, 병든 격도 약을 만나 살아난다. 더구나 타고난 여덟 글자가 파격이어도, 살아가며 만나는 큰 흐름이 그 병을 고쳐 주면 도로 살아나기도 한다. 그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한 자리를 마련해 다룬다. 그리고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깨진 격을 무엇이 다시 살리는가. 그 살리는 한 글자를 찾는 일이, 바로 다음 파트인 용신(用神)이다. 격이 사주의 뼈대라면, 용신은 그 뼈대에 가장 필요한 처방이다. 격국에서 용신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바로 여기에 놓인다.
타고난 골조가 좋다고 안심하고, 나쁘다고 절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격이 무너지고 또 살아나는 이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니,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좋은 골조로 났다고 안심할 것도, 깨진 격으로 났다고 절망할 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이 살리는가, 그 물음 앞에서야 사주는 비로소 정해진 도면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다.
타고난 격이 전부가 아니다. 깨진 자리를 무엇이 살리는가, 그 물음이 용신으로 이어진다. 내 격은 성격일까 파격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용신이란 무엇인가 (내게 가장 필요한 한 글자)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