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치고 얽히는 사이, 충과 원진
정면으로 부딪쳐 깨지는 충과, 비스듬히 어긋나 얽히는 원진. 흔히 '안 맞는 띠'로 묶이는 둘의 결을 가르고, 겁주지 않는 눈으로 다시 읽는다.
잘 맞는 사이가 있으면 그 반대도 있다. 동물 편에서 "부딪치는 띠"로 적은 충, 그리고 한 줄로만 적어 둔 원진이다. 둘 다 흔히 "안 맞는 띠"로 묶이지만, 결이 사뭇 다르다.
충(沖)은 정면으로 맞서는 짝이다. 여섯이 있다. 자오, 축미, 인신, 묘유, 진술, 사해. 열두 자리를 둥글게 늘어놓으면 정반대편에서 마주 보는 짝이다. 자(정북)와 오(정남)처럼. 물과 불, 봄과 가을처럼 성질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래서 충은 깨고 흔드는 힘이다.
다만 충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고여서 정체된 것을 깨워 움직이게 하는 것도 충이다. 부딪쳐야 비로소 트이는 자리가 있다. 충은 위기인 동시에 변화의 계기다.
원진(怨嗔)은 충처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는다. 여섯 쌍은 자미, 축오, 인유, 묘신, 진해, 사술이다. 비스듬히 어긋난 자리에서 묘하게 거슬리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끌려 못 떨어진다. 미움 원(怨)에 성낼 진(嗔), 애증에 가까운 사이다. 옛사람은 자미(쥐와 양) 원진을 두고 "쥐는 양의 뿔을 싫어하고, 양은 쥐의 꼬리를 싫어한다"고 했다. 서로의 어느 한 군데가 까닭 없이 거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둘을 가르면 이렇다. 충은 정면으로 부딪쳐 깨지고, 원진은 비스듬히 어긋나 얽힌다. 깨지는 것은 차라리 분명한데, 얽히는 것은 헤어나기가 더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충이니 원진이니 하는 띠끼리는 상극이라 안 된다"는 말은 지나치다. 도리어 충과 원진은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흔히 나온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처럼. 멀리 있는 사람과는 부딪칠 일도 얽힐 일도 없다.
가장 부딪치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곱씹을수록 묘하다. 충도 원진도 먼 사람과는 생기지 않는다. 부딪치고 거슬린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군가와 자꾸 부딪친다면, 미워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내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