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앞에 선 명리
고법에서 신법으로, 입에서 책으로 늘 다시 쓰여 온 명리. 통계와 데이터 앞에 선 오늘, 그것이 더해 주는 것과 끝내 놓치는 것.
여기까지 걸어오면 한 가지가 또렷해진다. 명리는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머문 적이 없다.
태어난 해를 사람의 근본으로 삼던 옛 방식은, 송나라를 지나며 태어난 날의 천간을 '나'로 세우는 방식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스승의 입에서 제자의 귀로만 건너던 이치는 책으로 묶여, 누구나 펼쳐 따지고 반박할 수 있는 학문이 되었다. 같은 사주를 두고도 짜임새와 균형과 기후라는 서로 다른 갈래로 나뉘어 다투며 깊어졌다. 그리고 바다 건너에서 영근 그 앎은 이 땅으로 건너와 우리말로 다시 물어지게 되었다. 돌아보면 명리의 역사란 곧, 명리가 시대마다 제 모습을 거듭 고쳐 써 온 역사다.
그리고 지금, 그 오랜 학문 앞에 낯선 것이 와 서 있다. 데이터다.
예전에 명리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익었다. 평생에 걸쳐 보아 온 숱한 사주와 그 사람들의 삶이 한 술사의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한눈에 꿰뚫는 직관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한평생 만날 수 있는 사주에는 끝이 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주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어떤 글자의 짜임이 어떤 삶과 자주 겹치는지를 수많은 사례에 걸쳐 견주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이 평생 더듬어야 했던 무늬를, 이제는 셈이 거든다.
이것은 분명 명리에 없던 힘이다. 하지만 여기엔 오래된 물음이 따라붙는다. 통계는 여럿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경향을 말해 준다. 그런데 명리가 본래 마주하고 앉은 것은 언제나 단 한 사람이었다. 백 사람에게서 자주 보이던 무늬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한 사람에게도 그대로 맞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숫자는 많은 사람의 평균을 말하지, 이 사람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데이터가 새로 더해 주는 것과 데이터가 끝내 놓치는 것을, 명리는 이제부터 천천히 가늠해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늘 다시 쓰여 온 이 학문이, 지금 또 한 번의 전환점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연주에서 일간으로 '나'의 자리를 옮겼듯, 구전에서 책으로 몸을 바꿨듯, 명리는 지금 데이터라는 낯선 언어 앞에서 또 한 번 제 모습을 고쳐 쓰려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명리를 데이터로 다시 쓰고 있다.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천 년을 훌쩍 넘겨 이어져 온 이 다시 쓰기가 우리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니까.
오래된 지혜가 낯선 새 도구를 만났을 때, 그 만남에서 무엇이 태어나고 무엇이 스러질 것인가. 그 물음은 이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참고
- 이 글은 명리의 현재와 데이터·통계의 관계를 두고 쓴 시론(時論)으로, 별도의 학술 출처를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