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고이는 근원, 수(水)와 건강
다섯 기운의 마지막, 수. 신장과 방광에 깃든 겨울 물의 기운으로, 그것이 마르고 넘칠 때 몸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그리고 잘 쉰 몸이 어떻게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지를 읽는다.
몸을 다섯 기운으로 보는 그 눈으로, 마지막으로 수(水)를 들여다본다.
수(水)는 낮은 데로 흘러 고이며 갈무리하는 기운이다. 한 해가 거둔 것이 겨울에 고이듯, 몸의 가장 깊은 곳에 생명의 밑천을 저장하는 힘. 그 기운이 머무는 자리가 신장과 방광이다. 신장은 그 밑천을 깊이 간직하고, 방광은 물을 담아 알맞게 내보낸다. 깊이 갈무리하는 성질을 따라, 뼈와 다리, 그리고 정신의 밑바닥에도 수(水)의 기운이 닿는다고 옛사람은 보았다.
신장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 밑천이 마르지 않고 그득하다는 뜻이다. 겨우내 땅속에 물이 고여 있듯이. 반대로 이 물이 어긋날 때, 몸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첫째는 수(水)가 약해 마를 때다.
토(土)는 수(水)를 다스린다. 흙이 물길을 잡는 관계다. 알맞으면 물을 가두어 쓰게 하지만, 그 막음이 지나치면 물이 메마른다. 수(水)의 기운이 약한데 토(土)가 너무 두텁고 메마르면, 수(水)의 장부인 신장과 방광이 먼저 마른다. 옛 명리는 이때 허리가 시큰하고, 기력이 달리며, 소변이 잦거나 시원치 않고, 귀가 잘 운다고 보았다. 깊이 고여 있어야 할 밑천이 마르니, 그 신호가 허리와 다리, 귀에서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반대다. 수(水)가 너무 넘칠 때다.
이번에는 수(水)가 다스리는 자리가 상한다. 수(水)는 화(火)를 누르는데, 물이 지나치게 차고 무거우면 그 눌림을 받는 화(火), 곧 심장의 온기가 식는다. 옛 명리는 이때 손발이 차고, 몸이 가라앉으며, 무엇에도 의욕이 일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뜻하게 돌아야 할 기운이 차게 가라앉는 것이다.
마음도 같은 줄에 꿰여 있다.
수(水)에 얽힌 감정은 두려움이다. 까닭 모를 두려움이 오래 이어지면 깊은 곳의 밑천이 닳는다. 크게 놀란 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그렇다. 거꾸로 그 밑천이 마르면, 별일 없이도 마음이 자꾸 불안해진다.
물론 이것은 진단이 아니다. 허리가 시큰하거나 기력이 달린다고 사주부터 펴 단정할 일이 아니라, 거듭되는 신호라면 먼저 의사를 찾는 것이 맞다. 위의 이야기는 옛사람이 몸을 하나로 보던 사고방식일 뿐이다.
그 사고방식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것이 있다.
수(水)는 다 쓴 기운을 낮은 곳에 고이게 하여 다시 채우는, 쉼과 저장의 기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좀처럼 고이지 못한다. 잠을 줄여 가며 쓰고, 두려움에 쫓겨 멈추지 못하고, 밑천이 비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자꾸 길어 쓴다. 채우지 못하고 쓰기만 한 물은 끝내 바닥을 드러내, 허리를 시리게 하고 몸을 차갑게 가라앉힌다. 늘 쫓기던 사람이 어느 날 기력을 잃고 자꾸 불안해지는 것은, 비어 가던 밑천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끔 깊이 고여 쉬는 일이다. 잠을 채우고,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겨울 땅이 봄을 위해 물을 품듯 제 밑천을 한 번 다시 채우는 일.
그리고 여기서 다섯 기운이 한 바퀴를 돈다. 겨울에 깊이 고인 물이 봄에 새싹을 밀어 올리듯, 잘 쉰 몸에서 다시 자라나려는 기운이 솟는다. 수(水)가 목(木)을 낳듯, 잘 비우고 잘 쉰 자리에서 새로운 봄이 시작된다. 몸을 다섯 기운의 균형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그 한 바퀴를 너무 한쪽에 머물지 않게 돌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