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흘러 다시 낳는 것, 수(水)
다섯 기운의 마지막, 수. 낮은 데로 흐르며 적시는 겨울 물의 기운으로, 끝나는 자리가 어떻게 다시 봄을 낳는지, 다섯 기운이 한 바퀴를 어떻게 닫는지 읽는다.
금(金) 다음은 수(水)다. 차갑게 식은 쇠가 물을 맺으니, 금(金)이 낳은 자식이 수(水)다. 그리고 수(水)는 오행의 마지막 기운이다.
수(水)는 물이다. 물의 성질은 낮은 데로 흐르며 적시는 데 있다. 옛사람은 이를 윤하(潤下), 적시며 아래로 감이라 했다. 높은 곳을 다투지 않고 늘 낮은 자리를 찾아 흐르며, 가는 길의 모든 것을 적셔 살린다. 만물의 근원이자, 한 해가 갈무리되어 고이는 자리, 그것이 수(水)다.
계절로는 한겨울이고, 하루로는 깊은 한밤이다. 방향으로는 북쪽, 빛깔로는 검은색이다. 무언가가 멈추어 응축되고 다음을 준비하는 자리에는 늘 수(水)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수(水)인 사람은 깊고 지혜롭다.
옛사람은 수(水)의 덕을 지(智), 곧 슬기라 보았다. 물이 어떤 그릇에도 맞추어 모양을 바꾸듯, 수(水)는 막히면 돌아가고 상황에 유연하게 흐른다. 겉으로 잔잔해도 그 속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 낮은 데로 흐르는 그 성질에는,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슬기가 들어 있다.
같은 수(水)라도 두 얼굴이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너른 바다와, 하늘에서 내려 만물을 적시는 빗물이다. 앞엣것이 임(壬)이고 뒤엣것이 계(癸)다. 그 차이는 천간 편에 맡기고, 여기서는 둘을 아우르는 수(水)를 본다.
수(水)는 금(金)에게서 났다. 그리고 수(水)는 나무를 키운다. 물이 씨앗을 적셔 싹을 틔우니, 수(水)가 목(木)을 낳는다. 바로 여기서 오행의 한 바퀴가 닫힌다. 목(木)이 화(火)를, 화(火)가 토(土)를, 토(土)가 금(金)을, 금(金)이 수(水)를, 그리고 수(水)가 다시 목(木)을 낳는다. 끝의 물이 처음의 나무를 길러 내는 것이다.
다스리는 관계도 있다. 수(水)는 화(火)를 다스린다. 물이 불을 식힌다. 앞서 화(火) 편에서 보았듯, 이는 끄기 위함이 아니라 그 열을 알맞게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수(水)는 토(土)에게 다스려진다. 둑이 물길을 잡아 준다. 제멋대로 흐르기만 하던 물도, 흙이 자리를 정해 줄 때 비로소 한 줄기 강이 된다.
여기까지가 다섯 기운이 서로 낳고 다스리는 그물이다. 어느 하나 홀로 선 기운이 없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지금을 본다.
지금은 끝과 낮음을 두려워하는 시대다. 위로 오르는 것만 성공이라 여기고, 멈추거나 내려가는 자리를 실패로 본다. 한 해가 저물고 무언가가 끝나는 겨울 같은 시간을, 우리는 자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일을 한다.
모든 물이 흘러 내려가 고인 그 낮고 어두운 자리에서, 이듬해 봄에 솟을 씨앗이 적셔진다. 끝은 그저 끝이 아니다. 가장 깊이 가라앉은 곳이 곧 다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다섯 기운이 한 바퀴를 돌아 수(水)가 다시 목(木)에게 손을 건네듯, 잘 갈무리된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목(木)에서 출발한 다섯 기운이 수(水)에서 닫히고, 그 수(水)가 다시 목(木)을 낳는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