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서 다시 벼려지는 것, 금(金)
다섯 기운의 네 번째, 금. 거두고 다듬는 가을 쇠의 기운으로, 단단함의 진짜 힘이 바뀌지 않음이 아니라 다시 벼려짐에 있음을 읽는다.
토(土) 다음은 금(金)이다. 흙이 오래 다져져 그 속에서 광물이 여무니, 토(土)가 낳은 자식이 금(金)이다.
금(金)은 쇠다. 그리고 쇠의 일은 거두고 다듬는 데 있다. 봄과 여름이 펼치고 자라는 기운이었다면, 가을의 금(金)은 무성하던 것을 베어 알맹이만 남긴다. 옛사람은 금(金)의 성질을 종혁(從革)이라 했다. 따르고 바뀐다는 뜻이다. 본래의 거친 모습을 버리고, 두드려지고 벼려져 다른 것으로 거듭나는 성질이다.
계절로는 가을이고, 하루로는 해가 기우는 저녁이다. 방향으로는 서쪽, 빛깔로는 흰색이다. 무언가가 매듭지어지고 단단해지는 자리에는 늘 금(金)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금(金)인 사람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한번 한 약속은 무겁게 지킨다. 옛사람은 금(金)의 덕을 의(義), 곧 옳음을 향한 마음이라 보았다. 베어야 할 것을 베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단호함, 그것이 금(金)의 결단이다.
같은 금(金)이라도 두 얼굴이 있다. 산에서 막 캐낸 거친 무쇠와, 불과 숫돌을 거쳐 빛나는 보석이다. 앞엣것이 경(庚)이고 뒤엣것이 신(辛)이다. 그 차이는 천간 편에 맡기고, 여기서는 둘을 아우르는 금(金)을 본다.
금(金)도 홀로 단단해진 것이 아니다.
쇠는 흙에서 났다. 토(土)가 금(金)을 낳는다. 그리고 금(金)은 차갑게 식어 물을 맺는다. 바위틈에서 샘이 솟고 서늘한 쇠에 이슬이 어리듯, 금(金)이 수(水)를 낳는다. 거두는 기운이 다음의 흐름을 빚어내는 것이다.
다스리는 관계도 있다. 금(金)은 목(木)을 다스린다. 도끼가 나무를 친다. 앞서 목(木) 편에서 보았듯, 이는 꺾기가 아니라 다듬기다. 가지를 쳐 주어야 나무가 곧고 튼튼하게 자란다.
그리고 여기에 금(金)의 가장 깊은 비밀이 있다. 금(金)은 화(火)에게 다스려진다.
쇠는 불에 녹는다. 단단하기로는 으뜸인 금(金)이, 불 앞에서는 흐물흐물 모습을 잃는다. 그러나 바로 그 녹음을 거쳐야 무쇠는 칼이 되고 종이 된다. 종혁이라는 말이 여기서 산다. 금(金)은 끝내 바뀌기를 받아들이는 쇠다. 불에 제 모습을 내어주고, 두드려져 다시 벼려질 때 비로소 쓸모를 얻는다.
이쯤에서 지금을 생각한다.
지금은 단단하고 한결같은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바뀌지 않는 원칙, 처음 그대로의 고집. 한번 정한 것을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끝내 녹기를 거부한 쇠는 강한 것이 아니라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불 앞에서 한 번도 모습을 바꾸지 않은 무쇠는 칼이 되지 못한다. 그저 무겁고 거친 덩이로 남을 뿐이다. 진짜 단단함은 바뀌지 않는 데 있지 않다. 마땅한 불 앞에서 기꺼이 녹고, 두드려져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서는 데 있다. 가장 잘 벼려진 칼은, 가장 여러 번 불에 들어갔다 나온 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