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고 보태다, 억부(抑扶)
사주의 주인이 너무 약하면 보태고 너무 강하면 덜어 낸다. 가장 먼저 배우는 용신법 억부를, 보태는 사주와 더는 사주 둘로 나란히 읽는다.
명리에서 용신을 잡는 길은 여럿이지만, 가장 먼저 손에 익는 것이 억부(抑扶)다. 억은 누르는 일이고 부는 보태는 일이다. 한 글자로 줄이면 균형이다. 사주 안에서 어떤 기운이 넘치면 눌러 가라앉히고, 모자라면 채워 일으킨다.
그 저울의 추가 되는 글자가 있다. 태어난 날의 위 글자, 일간(日干)이다. 명식에서 나를 가리키는 자리이고, 억부는 늘 이 한 글자가 사주 안에서 힘이 있는지 없는지를 재는 데서 시작한다. 일간이 힘에 부치면 보태고, 힘이 넘치면 덜어 낸다. 단순해 보이지만, 무엇이 그를 약하게 하고 무엇이 강하게 하는지를 읽어 내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실제 사주 둘을 나란히 놓는 편이 빠르겠다. 하나는 약해서 보태야 하고, 하나는 강해서 덜어 내야 한다. 둘 다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세운 사주다.
하나, 약하니 보탠다
時 日 月 年
戊 丙 甲 壬
戌 辰 辰 午
↑ 일간 丙
날의 위 글자가 병(丙), 화(火)다. 한낮의 해 같은 불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이 병화가 디딘 자리에 토(土)가 가득하다. 태어난 달이 진(辰)이라 토가 힘을 쥐는 때인 데다, 월과 일의 아래가 모두 진이고 시의 아래도 술(戌)이며, 시의 위에는 무(戊)까지 떠 있다. 토가 사방을 메운 형국이다.
화는 토를 데워 주지만, 토가 지나치게 많으면 도리어 제 빛을 거기에 묻는다. 명리에서는 이를 토다화회(土多火晦), 토가 많아 화의 빛이 어두워진다고 한다. 화로에 재가 그득 쌓이면 불씨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병화는 본디 한낮의 해이건만, 이 사주에서는 그 빛이 토에 잠겨 흐릿하다. 약하다.
이때 월의 위에 앉은 갑(甲), 목(木)이 두 가지 일을 한다. 먼저 화의 땔감이 된다. 목이 화를 살리니 꺼져 가던 병화가 되살아난다. 동시에 그 목은 뿌리로 무성한 토를 헤집어, 화를 가리던 두꺼운 토를 솎아 준다. 빛을 되찾게 하는 글자가 곧 갑목이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목이고, 그를 돕는 자리에 년간의 임(壬), 수(水) 한 줄기가 있어 목을 적셔 키운다.
이렇게 목이 서면 그림이 환해진다. 목과 화가 만나 서로를 밝히는 것을 목화통명(木火通明)이라 한다. 어두운 화로에 마른 장작이 들어가 불꽃이 다시 일고 둘레가 밝아지는 장면이다. 보태는 글자 하나가 들어왔을 뿐인데 사주 전체의 결이 환해진다. 나를 낳고 받쳐 주는 기운을 인수(印綬)라 하는데, 이 인수를 용신으로 쓰는 사람은 흔히 배움이나 든든한 토대가 등을 받쳐 줄 때 제 빛을 낸다고 본다. 약해진 화에게 정작 필요했던 것은 더 센 화가 아니라, 그 불씨를 지펴 줄 한 그루 목이었던 셈이다.
둘, 강하니 덜어 낸다
時 日 月 年
辛 甲 乙 庚
未 寅 卯 子
↑ 일간 甲
이번엔 날의 위 글자가 갑(甲), 목(木)이다. 곧게 솟는 큰 나무다. 그런데 태어난 달이 묘(卯)다. 묘월은 목이 가장 기세 좋게 뻗는 때이고, 갑목에게는 그 기운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는 양인(羊刃)의 자리다. 곁에는 을(乙)이라는 또 다른 목이 어깨를 걸고, 아래로는 인(寅)과 묘가 줄지어 목을 받친다. 시의 위 신(辛) 하나를 빼면 천간도 지지도 목 편이다. 게다가 년의 아래 자(子), 수(水)가 그 목을 쉼 없이 적신다. 한 그루가 아니라 빽빽한 숲이다. 차고 넘친다.
넘치는 것은 덜어 내야 쓸모를 얻는다. 이 사주에는 경(庚)과 신(辛), 곧 금(金)이 있다. 금은 목을 다듬는 연장이다. 우거진 가지를 쳐 내고 굽은 줄기를 깎아 재목으로 세운다. 명리에서 금은 목에게 관(官), 나를 다스리는 기운이 되는데, 양인처럼 거센 목일수록 이 다스림이 더 절실하다. 거친 원목이 도끼와 대패를 거쳐 기둥이 되듯, 강한 갑목은 금을 만나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금이다.
다만 변수가 하나 있다. 곁의 을목이 그 금과 가만히 손을 잡아, 들었던 연장을 내려놓게 만든다. 글자끼리 이렇게 손을 맞잡고 서로의 일을 미루거나 풀어 주는 사정이 있는데, 이런 얽힘을 읽는 법은 뒤편에서 따로 다룬다. 여기서는 강한 목을 금으로 다듬는다는 억부의 큰 줄기만 보아 두면 된다.
같은 곳을 향한다
두 사주는 정반대다. 하나는 약해서 보태고, 하나는 강해서 덜어 낸다. 그러나 향하는 곳은 같다. 한쪽으로 기운 저울을 가운데로 되돌리는 일이다. 명리에서는 이 가운데를 중(中)이라 부른다. 억부는 그 중을 향하는 가장 담백한 손길이다.
한 가지는 짚어 두고 싶다. 약하다고 모자란 사주도, 강하다고 잘난 사주도 아니다. 약한 화는 지펴 줄 목을 만나면 환히 살아나고, 넘치는 목은 다듬을 금을 만나면 기둥이 된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가의 문제다. 같은 글자라도 어떤 사주에는 약이 되고 어떤 사주에는 짐이 된다. 억부가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아마 그 분별일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사람보다 내 책상을 먼저 떠올린다. 일이 몰리면 하나를 미뤄 덜고, 한가해지면 미뤄 두었던 것을 당겨 채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두려는 그 매일의 조정이, 어쩌면 내가 나에게 쓰는 억부다. 사주를 몰라도 사람은 이미 저울을 만지며 산다. 명리는 그 손길에 오래된 이름 하나를 붙여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