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면 데우고 타면 식힌다, 조후(調候)
사주에도 추위와 더위가 있고 메마름과 축축함이 있다. 춥고 습한 사주는 데우고 덥고 건조한 사주는 식히는 조후를, 두 사주로 나란히 읽는다.
지난 편에서는 사주 안 글자들의 많고 적음을 저울질했다. 억부는 그렇게 무게를 맞추는 일이었다. 그런데 글자의 수가 얼추 맞아도 사주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너무 춥고 습하거나, 너무 덥고 메마를 때다.
조후(調候)는 그 기후를 고르는 일이다. 조는 고른다는 뜻이고 후는 철, 곧 계절의 기운이다. 사주에도 추위와 더위가 있고 메마름과 축축함이 있다. 아무리 글자가 제자리에 놓여도, 얼고 질척하면 싹이 트지 못하고 메마르게 타들어 가면 잎이 마른다. 그래서 춥고 습한 사주는 데워 말리고, 덥고 메마른 사주는 식혀 적신다. 억부가 무게를 다룬다면, 조후는 온도와 물기를 다룬다.
이번에도 사주 둘을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진다. 하나는 춥고 습해 데워야 하고, 하나는 덥고 메말라 식혀야 한다. 역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세운 사주다.
하나, 춥고 습한 사주
時 日 月 年
丁 甲 辛 丁
卯 寅 丑 亥
↑ 일간 甲
날의 위 글자가 갑(甲), 목(木)이다. 곧게 솟는 큰 나무다. 그런데 태어난 달이 축(丑), 한 해가 깊어 가는 섣달이다. 겨울 한복판이다. 아래로는 해(亥)와 축이 찬 수(水)와 진 토(土)를 깔아 발밑이 얼고 질다. 위로는 신(辛)이라는 금(金)이 서늘함마저 더한다. 춥고 습한 땅이다. 목은 서 있지만 뿌리부터 얼고 젖어 있다. 이런 자리에는 수가 더 와도 새싹이 돋지 않는다. 얼어 있는 한, 곁에 아무리 좋은 글자가 있어도 봄을 시작하지 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한 줄기 볕이다. 천간에 떠 있는 정(丁), 화(火)다. 등불처럼 작아도 따뜻한 불이다. 언 목을 녹이고 질척한 땅을 데워 말리니, 멈춰 있던 기운이 다시 돈다. 명리에서는 춥고 습한 겨울 나무가 화를 만나는 것을 무엇보다 반긴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화다. 글자 수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여도, 온도와 물기가 맞지 않으면 그 글자들이 제 일을 못 한다. 데우는 한 글자가 비로소 사주를 깨운다.
둘, 덥고 건조한 사주
時 日 月 年
丁 丁 辛 己
未 巳 未 亥
↑ 일간 丁
이번엔 날의 위 글자가 정(丁), 화(火)다. 등불 같은 불이다. 그런데 둘레가 온통 뜨겁고 메말랐다. 시의 위에 또 정화가 있어 화가 둘이고, 아래로는 사(巳)와 미(未)가 마른 열기를 보탠다. 한여름 대낮, 물기 한 점 없이 달군 가마 속 같은 형국이다. 화가 이미 넘치니 더 보탤 일이 아니다. 식히고 적셔야 한다.
다행히 년의 아래 해(亥) 속에 수(水)가 있다. 메마른 사주에 물 한 줄기는 단비와 같다. 타들어 가던 열기를 가라앉히고 마른 땅을 적셔, 만물이 숨 쉴 자리를 낸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수다. 모자란 것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넘치는 열을 덜고 마른 땅을 축여 숨통을 틔우는 수다.
치우침을 고른다
두 사주를 보면 조후의 자리가 또렷해진다. 춥고 습한 사주에는 화를 들이고, 덥고 메마른 사주에는 수를 들인다. 여기까지는 억부와 닮았다. 부족한 쪽을 채우고 넘치는 쪽을 던다는 점에서.
그런데 조후에는 한 가지 다른 무게가 있다. 글자의 수를 아무리 잘 맞춰도, 사주가 얼어붙어 있거나 메마르게 타들어 가 있으면 그 균형이 끝내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봄이 와야 씨앗이 싹트고, 한낮의 열이 가셔야 곡식이 여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다른 셈을 다 마친 뒤에도 마지막으로 사주의 춥고 더움, 마르고 젖음을 살폈다. 좋은 글자를 두루 갖추고도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 흔히 이 한난조습(寒暖燥濕)의 균형이 어긋나 있곤 했다. 조후는 여러 용신법 가운데 하나이면서, 모두가 마지막에 한 번은 거쳐야 하는 문 같은 데가 있다.
좋은 글자를 두루 갖추고도 어쩐지 풀리지 않는 사주가 있다. 그럴 때 옛사람은 마지막으로 그 기후를 의심했다. 차고 더움, 마르고 젖음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살리기도 시들게도 한다.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그것이 어떤 기운에 잠겨 있느냐가 더 멀리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순서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무엇을 갖췄는지 따지기 전에, 그 사주가 지금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잠겨 있는지부터 가늠해 본다는 것. 사람을 헤아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