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사이를 잇다, 통관(通關)
두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쳐 막힐 때, 사이에 든 한 글자가 길을 낸다. 잇는 용신 통관을, 부딪침을 흐름으로 바꾸는 사주 둘로 읽는다.
억부는 많고 적음을 보았고, 조후는 춥고 더움을 보았다. 이번에는 부딪침을 본다. 그 전에 짚고 갈 것이 있다. 오행이 서로 맺는 두 가지 관계다.
하나는 낳고 돕는 사이다. 목(木)은 화(火)를 살리고, 화는 토(土)를 낳고, 토는 금(金)을 품고, 금은 수(水)를 머금고, 수는 다시 목을 키운다. 한 기운이 다음 기운을 일으켜 주는 이 고리를 상생(相生)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누르고 치는 사이다. 목은 토를 파고들고, 토는 수를 막고, 수는 화를 끄고, 화는 금을 녹이고, 금은 목을 벤다. 한 기운이 다른 기운을 억누르는 이 관계를 상극(相剋)이라 한다. 낳음과 누름, 이 두 고리가 맞물려 도는 것이 오행이다.
상극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알맞은 누름은 도리어 기운을 다잡아 준다. 그러나 두 기운이 가까이서 정면으로 부딪치면 둘 다 상하고, 사주의 흐름이 그 자리에서 막힌다.
이때 사이에 다른 기운 하나가 들어서면 풍경이 달라진다. 치던 쪽의 힘을 그 기운이 받아, 맞던 쪽으로 부드럽게 흘려보낸다. 곧장 부딪치던 상극이 한 다리를 거치며 상생의 고리로 풀리는 것이다. 다투던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 중재로 들어서면 주먹이 말이 되고 말이 길이 되듯이. 이 매개 기운을 통관(通關), 빗장을 풀어 통하게 한다는 뜻으로 부른다. 그 글자가 용신이 된다.
이번에도 사주 둘로 본다. 둘 다 나를 치러 오는 상극의 기운과 나 사이에 한 글자가 들어 상생의 길을 내는 경우다.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세운 사주다.
하나, 목과 토 사이에 든 화
時 日 月 年
戊 己 癸 丁
辰 未 卯 卯
↑ 일간 己
날의 위 글자가 기(己), 토(土)다. 너른 밭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태어난 달과 그 곁에 묘(卯)가 둘, 목(木)이 버티고 섰다. 목은 토를 파고든다. 나무뿌리가 밭을 헤집듯, 목의 기운이 일간 기토를 정면으로 친다. 목이 토를 누르는 상극이다. 일간만 놓고 보면 위태롭다.
그런데 천간에 정(丁), 화(火)가 떠 있다. 목은 화를 살리고, 화는 다시 토를 낳는다. 목이 토를 치려던 힘이 화를 거치며 토를 기르는 힘으로 바뀐다. 목에서 화로, 화에서 토로, 막혔던 상극이 상생의 한 줄기로 풀려 흐른다. 나를 치러 오던 것이 나를 키우는 것으로 돌아서는 셈이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화다. 목과 토 사이에 들어 둘을 잇는 한 글자다.
둘, 토와 수 사이에 든 금
時 日 月 年
戊 癸 丙 己
午 未 子 酉
↑ 일간 癸
이번엔 날의 위 글자가 계(癸), 수(水)다. 이슬이나 시냇물 같은 맑은 물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둘레에 토가 많다. 천간에 무(戊)와 기(己)가 위아래로 떠 있고, 아래에도 미(未)가 토를 더한다. 토는 수를 막고 흐린다. 둑이 물길을 가로막듯, 토의 기운이 일간 계수를 정면으로 친다. 토가 수를 누르는 상극이다.
이때 년의 아래 유(酉), 금(金)이 사이에 든다. 토는 금을 낳고, 금은 다시 수를 낳는다. 토가 수를 막으려던 힘이 금을 거치며 수를 맑게 길어 올리는 힘으로 바뀐다. 토에서 금으로, 금에서 수로 상생의 고리가 이어진다. 막아서던 것이 길어 올리는 것으로 돌아선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금이다. 토와 수 사이에 들어 둘을 잇는 한 글자다.
막힌 자리에 길을 낸다
두 사주는 닮았다. 나를 치러 오는 상극의 기운이 있고, 그 사이에 한 글자가 들어 그 부딪침을 상생의 흐름으로 바꾼다. 통관이 하는 일은 그 한 가지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잇는 것. 치던 힘을 막아 세우는 대신, 길을 터 주어 그 힘이 나를 돕는 데로 흘러가게 한다.
이 대목이 통관을 다른 용신법과 갈라놓는다. 억부는 넘치는 것을 덜고 모자란 것을 보탰다. 통관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다. 있는 두 기운을 그대로 두되, 사이에 매개를 넣어 관계를 바꾼다. 같은 글자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았는데도, 다리 하나가 놓이면서 막혀 있던 사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사람 사이에도 그런 자리가 있다. 두 사람이 맞서기만 할 때 누군가 사이에 서서 한쪽의 말을 다른 쪽이 알아듣게 옮겨 주면, 싸움이 대화가 된다. 그는 어느 편도 아니면서 둘 다를 흐르게 한다. 통관이라는 오래된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그렇게 사이에 서 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막힌 자리에 길을 내 온 것은 늘 그런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