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찾아 약을 쓰다, 병약(病藥)
사주에서 가장 거슬리는 한 글자가 병이고, 그 병을 다스리는 글자가 약이다. 약이 곧 용신인 병약을, 병과 약이 또렷한 두 사주로 읽는다.
억부는 무게를, 조후는 온도와 물기를, 통관은 부딪침을 보았다. 이번에는 병과 약을 본다.
사주를 한 사람의 몸이라 치면, 그 안에는 흐름을 가장 거스르는 글자가 하나씩 있곤 한다. 다른 글자를 치고 막아 사주 전체를 앓게 하는 자리다. 명리에서는 이것을 병(病)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병을 눌러 없애 주는 글자를 약(藥)이라 한다. 병약(病藥)은 이름 그대로다. 의원이 병을 짚어 약을 쓰듯, 사주의 병을 찾아 그것을 다스리는 글자를 용신으로 삼는다.
병이 있다는 말이 곧 나쁜 사주라는 뜻은 아니다. 옛글에는 병이 있어야 도리어 귀하다는 말이 있다. 병이 또렷하고 그 병에 듣는 약이 분명하면, 약이 제 몫을 하는 동안 사주가 크게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약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이 병이고 무엇이 약인지를 또렷이 가려내는 일이다.
사주 둘로 본다. 둘 다 병이 분명하고 그 병에 듣는 약도 분명한 사주다.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세운 사주다.
하나, 약은 불이다
時 日 月 年
丙 甲 丁 乙
寅 申 酉 卯
↑ 일간 甲
날의 위 글자가 갑(甲), 목(木)이다. 그런데 태어난 달이 유(酉), 금(金)이 가장 단단해지는 때다. 일의 아래 신(申)까지 더해 금이 둘, 날카로운 금이 일간을 정면으로 겨눈다. 금은 목을 벤다. 이 사주에서 갑목을 가장 위협하는 것이 바로 이 금이다. 병이 분명하다.
다행히 천간에 병(丙)과 정(丁), 화(火)가 떠 있다. 화는 금을 녹인다. 두 불이 겨누어 오던 금을 눌러, 일간이 베이지 않도록 막아선다. 병을 다스리는 글자가 곧 이 화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화다. 식상이 관살을 제어한다 하여 식상제살(食傷制殺)이라 부르는 모양인데, 어려운 이름을 걷어 내면 결국 같은 그림이다. 나를 베러 오는 칼을 불이 막아 준다.
둘, 약은 물이다
時 日 月 年
辛 甲 戊 己
未 子 辰 巳
↑ 일간 甲
이번에도 날의 위 글자는 갑(甲), 목(木)이다. 그런데 이번엔 둘레가 온통 토(土)다. 천간에 무(戊)와 기(己)가 서고, 지지에 진(辰)과 미(未)가 더해, 흙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명리에서 토는 갑목에게 재(財), 곧 재물에 해당하는 기운이다. 재물이 많으니 좋아 보이지만, 한 그루 나무가 일구기엔 밭이 지나치게 넓다. 다 가꾸지 못한 땅은 도리어 짐이 되어, 갑목은 제 힘을 그 넓은 재에 다 빼앗긴다. 재가 너무 많아 일간이 도리어 약해지는 이 모양을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 한다. 여기서는 넘치는 재가 병이다.
약은 일의 아래 자(子), 수(水)다. 수는 목을 낳는다. 물이 갑목의 뿌리를 적셔, 너른 밭에 지쳐 가던 나무를 다시 일으킨다. 나를 낳아 받쳐 주는 이 기운, 곧 인수가 약이 된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수다. 첫 사주가 베러 오는 칼을 불로 막았다면, 이 사주는 메말라 가던 뿌리를 물로 적신다. 병이 다르니 약도 다르다.
병을 알면 약이 보인다
두 사주를 지나며 병약의 결이 드러난다. 먼저 사주에서 가장 거슬리는 한 글자를 병으로 짚고, 그 병을 다스리는 글자를 약으로 세운다. 한쪽은 나를 베는 금이 병이라 불로 막았고, 한쪽은 나를 짓누르는 재가 병이라 물로 살렸다. 병이 무엇이냐에 따라 약은 전혀 다른 곳에서 온다. 억부가 저울을 다루고 통관이 다리를 놓았다면, 병약은 진단에 가깝다. 무엇이 이 사주를 앓게 하는가, 그 하나를 먼저 묻는다.
물론 병은 또렷한데 약이 사주 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시선을 원국 너머로 옮긴다. 약이 될 글자가 흘러드는 때, 곧 운(運)에서 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타고난 자리가 못다 한 일을 흐르는 시간이 마저 한다는 이야기는, 뒤에 따로 풀 자리가 있다.
나는 병약을 들여다볼 때면 좋은 의원을 떠올린다. 좋은 의원은 증상마다 약을 늘어놓지 않는다. 먼저 무엇이 이 몸을 가장 힘들게 하는지를 찾고, 거기에 한 가지를 쓴다. 사주가 그렇고, 어쩌면 삶도 그런 듯하다. 어지러운 문제 앞에서 정작 물어야 할 것은 늘 하나다. 지금 나를 가장 앓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하나를 알면, 약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