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자로 쓸 것인가, 취용(取用)
용신이 어느 오행인지 정한 다음에도 물음은 남는다. 그 오행을 사주의 어느 글자로 삼을 것인가. 드러난 것 먼저, 없으면 숨은 것에서 취하는 취용을 두 사주로 읽는다.
지금까지는 용신을 어떤 오행으로 삼을지를 이야기했다. 보태는 목, 데우는 화, 잇는 금, 다스리는 화. 그런데 오행을 정하고 나면 한 가지 물음이 더 남는다. 같은 목이라도 사주 안에는 갑(甲)도 있고 을(乙)도 있고 인(寅)도 묘(卯)도 있다. 그중 어느 글자를 용신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 고르는 일을 취용(取用), 곧 쓸 것을 취한다고 한다.
원칙은 단순하다. 드러난 것을 먼저 쓰고, 드러난 것이 없으면 숨은 것에서 끌어 쓴다. 천간은 하늘로 드러난 자리이고 지지는 땅속에 자리 잡은 곳이라, 천간에 떠 있는 글자는 곧장 손에 잡히고 힘을 쓰기 쉽다. 반대로 지지 속에 감춰진 기운은 끌어 올려야 비로소 쓸 수 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천간을 먼저 본다.
말보다 사주가 빠르다. 하나는 천간에서 곧장 취하는 사주, 하나는 지지에서 끌어 쓰는 사주다.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세운 사주다.
하나, 천간에서 취한다
時 日 月 年
甲 丁 乙 辛
辰 酉 未 酉
↑ 일간 丁
날의 위 글자가 정(丁), 화(火)다. 태어난 달이 미(未)라 메마른 기운이 있고, 곁에 유(酉)가 둘이라 금(金)이 만만치 않다. 작은 불이 제 힘을 지키려면 불을 살려 줄 목(木)이 있어야 한다. 이 사주의 용신은 목이다. 여기까지는 앞에서 해 온 이야기다.
이제 그 목을 어느 글자로 쓸지를 본다. 마침 시의 위에 갑(甲), 큰 나무가 또렷이 떠 있다. 월의 위에도 을(乙)이 있다. 굳이 땅속을 뒤질 것 없이, 천간에 드러난 갑목을 그대로 취한다. 드러난 글자는 쓰기 쉽고 흔들림이 적다. 용신이 목이라는 결정과, 그 목을 시간의 갑목으로 삼는다는 결정이 이렇게 한자리에서 맞아떨어진다.
둘, 지지에서 끌어 쓴다
時 日 月 年
己 壬 戊 癸
酉 午 午 亥
↑ 일간 壬
이번엔 날의 위 글자가 임(壬), 수(水)다. 태어난 달이 오(午)라 한낮의 열기가 강하고, 천간에는 무(戊)와 기(己), 토(土)가 일간을 누른다. 약해진 물을 받쳐 줄 기운은 물을 낳아 주는 금(金)이다. 이 사주의 용신은 금이다.
그런데 천간을 아무리 둘러봐도 금이 보이지 않는다. 토와 수만 떠 있을 뿐이다. 드러난 자리에 쓸 글자가 없으니, 이번엔 시선을 지지로 내린다. 시의 아래 유(酉) 속에 신금이 들어 있다. 땅속에 감춰진 그 금을 끌어 올려 용신으로 삼는다. 천간에서 곧장 쥘 수 없을 때, 사주는 이렇게 지지를 뒤져 숨은 글자를 불러낸다.
드러난 것과 숨은 것
두 사주는 같은 일을 다른 자리에서 했다. 용신의 오행을 정한 뒤, 그 오행을 어느 글자로 삼을지를 골랐다. 한쪽은 천간에 드러난 글자를 곧장 취했고, 한쪽은 지지에 숨은 글자를 끌어 올렸다. 취용이란 그 고르는 일이다. 용신을 정하는 것과 그 용신을 어느 글자로 세우는 것은 한 호흡처럼 보여도 실은 두 걸음이고, 이 두 걸음을 다 밟아야 사주 한 채의 용신이 비로소 또렷이 선다.
천간에 드러난 글자는 화려하고 손에 잡힌다. 그러나 지지에 묻힌 글자가 사주를 떠받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 사람을 읽을 때도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지만, 그 사람을 정말 버티게 하는 힘은 잘 보이지 않는 안쪽에 묻혀 있곤 한다. 드러난 것을 먼저 보되 숨은 것을 끝내 살피는 일. 취용이 가르치는 순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