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데서 시작되는 것, 자(子)
지지 열두 글자의 첫머리, 자. 한 해가 가장 깊이 잠드는 한겨울 한밤의 기운으로, 끝에서 다시 시작이 잉태되는 자리를 읽는다.
지지(地支) 열두 글자가 한 바퀴 도는 수레바퀴라면, 그 출발점에 자(子)가 있다.
자(子)는 한겨울이다. 음력 동짓달, 한 해가 가장 추운 때. 시간으로는 한밤중, 자시(子時)다. 자정을 사이에 둔 가장 깊은 어둠. 띠로는 쥐. 그러나 자(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쥐보다 먼저 이 어둠과 추위를 보아야 한다.
오행으로 자(子)는 물(水)이다. 그것도 한밤의 물, 언 듯 고요한 물이다. 만물이 활동을 멈추고, 씨앗은 땅속 깊이 웅크려 잠든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죽은 듯한 계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안에서 한 해가 다시 시작된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해는 다시 조금씩 길어진다. 가장 깊은 어둠의 한복판에서 빛이 돌아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子)가 끝이면서 시작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응축된 씨앗 속에 이미 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자(子)인 사람에게는 안으로 모으는 힘이 있다.
밖으로 떠벌리기보다 속으로 깊어진다. 조용히 생각을 쌓고, 남이 보지 않는 데서 다음을 준비한다. 한밤의 물처럼 차분하고 영민하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요한 자리에 가장 큰 잠재력이 응축되어 있다.
이제 지금을 본다.
지금은 멈춤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다. 쉬는 것은 뒤처지는 것 같고,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 같다. 가만히 웅크려 있는 시간을 우리는 자주 낭비라 부른다. 늘 무언가를 내보이고 움직여야 안심한다.
그러나 씨앗은 겨우내 땅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동안,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
봄에 솟아오를 힘을 그 어둠 속에서 응축하는 것이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모으는 시간이다. 가장 추운 자리에서 봄이 잉태된다는 이 오래된 이치를 떠올리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듯한 겨울의 시간이 조금 덜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