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를 닫고 다시 품는 물, 해(亥)
지지 열두 글자의 끝, 해. 겨울로 들어 만물이 쉬는 밤의 물로, 끝나는 자리가 어떻게 다음 봄을 품는지 읽는다.
술(戌) 다음에 해(亥)가 온다. 지지 열두 글자의 마지막이다.
해(亥)는 음력 시월, 입동(立冬)의 자리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어, 만물이 활동을 거두고 쉼으로 들어가는 때. 시간으로는 하루가 저무는 밤, 해시(亥時)다. 띠로는 돼지. 욕심 없이 넉넉하고 복스러운 그 짐승이 해(亥)를 닮았다.
오행으로 해(亥)는 물(水)이다. 같은 물이라도 한밤의 자(子)와는 모습이 다르다. 자(子)가 응축되어 잠든 물이라면, 해(亥)는 한 해 동안 흐르고 거둔 것이 너르게 고인 물이다. 저수지에 가득 찬 물처럼 깊고 너그럽다.
그래서 해(亥)인 사람은 너그럽고 깊다.
좀처럼 화내지 않고, 웬만한 일은 품어 넘긴다. 욕심을 부리기보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가득 고인 물처럼 여유롭고, 그 속을 쉬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
다만 그 너그러움이 게으름이 되고, 무던함이 우유부단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물속에는 한 가지가 더 들어 있다.
겨울에 고인 물은 그저 끝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이듬해 봄에 솟아오를 나무의 씨앗이 잠겨 있다. 한 해를 거두어 간직한 물이, 다음 한 해를 길러낼 양분이 되는 것이다. 해(亥)가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시작인 까닭이 여기 있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지금을 본다.
지금은 끝을 두려워하는 시대다. 한 해가 저물고, 한 시기가 닫히고, 무언가가 끝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주 허전해하고 조급해한다. 끝은 잃는 것이고, 멈춤은 뒤처지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한 해의 끝에 고인 물이 다음 봄의 나무를 키우듯, 잘 닫힌 끝은 다음을 품는다.
열두 글자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자(子)로 돌아간다. 해(亥)의 밤이 깊어지면, 그 끝에서 또 한 번 한겨울의 씨앗이 잠들기 시작한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응축되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그렇게 멈추지 않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