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둔 뒤 곳간을 지키는 땅, 술(戌)
가을이 저무는 술. 추수 끝난 들녘을 지키는 늦가을 흙의 기운으로, 거둔 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충직함을 읽는다.
유(酉) 다음에 술(戌)이 온다.
유(酉)가 거두어들이는 절정이었다면, 술(戌)은 그 가을이 저물어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늦가을이다. 음력 구월, 추수가 끝나 들녘이 비어 가는 때. 시간으로는 해가 진 뒤의 초저녁, 술시(戌時)다. 띠로는 개. 집과 곳간을 지키며 밤을 경계하는 그 짐승이 술(戌)을 잘 보여준다.
오행으로 술(戌)은 흙(土)이다. 봄의 진(辰)이 무언가를 길러내는 흙이었다면, 가을의 술(戌)은 거둔 것을 간직하는 흙이다. 한 해 동안 자라고 거둔 것이 이 땅에 모여 갈무리된다. 술(戌)은 마무리의 흙, 곳간의 흙이다.
그래서 술(戌)에는 지키는 힘이 있다.
거둔 것을 함부로 흘리지 않는다. 술(戌)인 사람은 책임감이 무겁고 의리가 깊다. 한번 맡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제 사람과 제 것을 위해서라면 물러서지 않는다. 개가 밤새 곳간을 지키듯, 묵묵하고 한결같다.
다만 지키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경계하느라 정작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쯤에서 지금을 돌아본다.
지금은 새것을 좇느라 가진 것을 가벼이 여기는 시대다. 더 좋은 것이 늘 다음에 있을 것 같고, 지금 손에 쥔 것은 금세 시시해진다. 무언가를 오래 지키는 사람은 변화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거두기만 하고 지키지 못하면, 곳간은 이내 빈다.
얻는 일만큼이나 지키는 일이 어렵다.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켜 준 사람과 물건의 고마움은,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