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것을 거두는 저녁, 유(酉)
가을이 무르익는 유. 잘 여문 열매를 거두는 저녁의 기운으로, 한 해의 결실을 매듭짓는 정밀함을 읽는다.
신(申) 다음에 유(酉)가 온다.
신(申)이 가을이 막 시작된 때였다면, 유(酉)는 그 가을이 무르익은 절정이다. 음력 팔월, 곡식이 누렇게 익어 거두어들이는 한가위의 계절. 시간으로는 해가 지는 저녁, 유시(酉時)다. 띠로는 닭. 때를 어김없이 알리고 깃을 단정히 고르는 그 새가 유(酉)를 닮았다.
오행으로 유(酉)는 쇠(金)다. 신(申)의 거친 무쇠와 달리, 유(酉)는 잘 벼린 낫이고 잘 다듬어진 보석이다. 신(申)이 거두기 시작했다면, 유(酉)는 그 거둠을 정밀하게 마무리한다. 쭉정이는 골라내고 알맹이만 단정히 갈무리하는, 결실의 완성이다.
그래서 유(酉)인 사람은 깔끔하고 정확하다.
일을 야무지게 매듭짓고, 흐트러진 것을 못 견딘다. 안목이 높고 눈썰미가 날카로워,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단번에 가려낸다. 닭이 새벽을 정확히 알리듯, 때와 매무새에 어김이 없다.
다만 그 날카로운 눈이 자신과 남을 너무 깐깐하게 재단하기도 한다. 작은 흠 하나에 전부를 마다하는 결벽.
이제 지금을 본다.
지금은 빠르게 많이 해내라고 하는 시대다. 일단 벌여놓고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하나를 끝까지 야물게 마무리하는 일은 더디고 답답해 보인다. 대충 거두고 서둘러 다음 밭으로 가는 쪽이 부지런해 보인다.
그러나 거둔 것을 단정히 갈무리하지 않으면, 애써 지은 농사도 곳간에서 썩는다.
잘 맺는 일은 잘 시작하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귀하다. 화려한 꽃은 봄에 다 피지만, 한 해의 곳간을 채우는 것은 가을 저녁에 조용히 거두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