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곧게 솟는 것, 갑목(甲木)
열 글자 중 가장 먼저 오는 갑목. 곧게 솟는 큰 나무의 기운과, 곧음이 짐이 되어버린 시대를 함께 읽는다.
천간(天干) 열 글자의 맨 앞에 갑(甲)이 선다.
순서가 첫째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갑(甲)은 무언가가 처음 시작되는 기운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새싹이 머리를 내미는 그 순간. 아직 여리지만, 방향만은 분명하다. 위로. 오직 위로.
갑(甲)을 큰 나무에 비유한다. 산속에 우뚝 선 거목,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동량(棟梁)의 나무. 누가 심은 것도, 다듬은 것도 아니다. 그냥 거기서 제 힘으로 자란 날것의 나무다.
그래서 갑(甲)인 사람에게는 곧음이 있다.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 앞장서려는 마음, 한번 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추진력. 갑(甲)은 잔머리를 굴리지 못한다. 비탈을 피해 돌아가기보다 정면으로 부딪힌다.
곧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곧은 것은 부러진다.
휘어질 줄 아는 풀은 강풍에 눕고 다시 일어서지만, 곧은 나무는 한계를 넘는 바람 앞에서 그대로 꺾인다. 갑(甲)의 미덕과 약점은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곧기 때문에 믿음직하고, 곧기 때문에 위태롭다.
여기서 잠시 지금을 본다.
곧은 사람이 칭송받던 시대가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곧 미더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곧게 버티는 사람은 종종 '고집스럽다'는 말을 듣는다. 유연하게 갈아타고 빠르게 적응하는 쪽이 영리해 보인다.
그렇다면 갑(甲)의 곧음은 이제 낡은 미덕일까.
모두가 휘는 시대일수록, 휘지 않고 선 한 사람의 자리가 오히려 또렷해진다. 방향을 자주 바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방향을 지키는 사람은 길잡이가 된다. 부러질 위험을 감수하고도 곧게 서 있는 것, 그것이 갑(甲)의 곧음이다.
모두가 방향을 바꾸는 시대다. 그럴수록 한 방향을 끝내 지키는 사람이, 나에게는 더 또렷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