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고 따라가는 사주, 종격(從格)
일간이 홀로 서기 어려울 만큼 약할 때, 자기를 고집하길 그만두고 가장 센 세력을 따르는 격이 있다. 버팀이 아니라 버림이 살길인 종격의 역설을 읽는다.
한눈에
- 종격이란 · 일간이 홀로 서기 어려울 만큼 약할 때,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가장 센 세력을 따르는 격.
- 무엇을 따르나 · 재면 종재, 관살이면 종살, 식상이면 종아, 비겁이면 종왕, 인성이면 종강, 두루 세면 종세.
- 역설 · 어설픈 힘은 휩쓸려 다치고, 깨끗이 약해 온전히 따를 때 큰 흐름을 탄다.
- 다시 읽기 · 따름은 무력함이 아니다. 버틸 때와 따를 때를 아는 것도 하나의 그릇이다.
앞 편의 일행득기격은 일간 자신이 그 큰 기운이었다. 나무가 나무로 가득한 사주의 주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다. 일간은 외롭게 약한데, 자기와는 다른 한 세력만 압도적으로 센 사주다. 사방이 온통 나를 치는 기운이거나, 온통 내가 감당 못 할 재물이거나. 이 약한 일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명리의 보통 이치는 일간이 힘이 있어야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이치가 뒤집힌다. 일간이 너무 약해 도저히 홀로 설 수 없을 때는, 억지로 버티면 부러진다. 차라리 자기를 고집하길 그만두고 가장 센 세력에 나를 맡겨 따라가는 편이 산다. 이렇게 따르는 격을 종격(從格)이라 한다. 그 세력의 흥망이 곧 나의 흥망이 되어, 도리어 큰 흐름을 함께 타는 것이다.
따르는 대상에 따라 이름이 갈린다. 재물의 세력을 따르면 종재격(從財格)이다. 감당 못 할 만큼 큰 재물이라면 맞서지 않고 그 재물을 좇는다. 나를 치는 관살의 세력을 따르면 종살격(從殺格)이다. 누르는 힘에 맞서는 대신 그 권위에 올라탄다. 내가 낳은 것의 세력을 따르면 종아격(從兒格)이다. 아(兒)는 자식, 곧 내가 내놓은 재능인 식상을 가리킨다. 그 재능에 나를 온전히 싣는다. 나와 같은 편인 비겁이 압도하면 종왕격(從旺格), 나를 낳는 인성이 압도하면 종강격(從强格)이다. 둘 다 자기 쪽 기운이 너무 세어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것은 같되, 따르는 것이 비겁이냐 인성이냐로 이름이 갈린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세력이 두루 강할 때는, 그 큰 대세를 따라 종세격(從勢格)이라 한다.
말로만 보면 아직 막막하니, 가상의 사주 한 장을 펴서 직접 짚어 보자. 실제 누구의 것도 아닌, 설명을 위한 사주다.
시 일 월 년
천간 무 갑 기 무
지지 술 술 축 술
가운데 일간부터 본다. 갑(甲), 큰 나무다. 그런데 그 둘레를 보라. 천간도 무(戊)와 기(己)로 흙이고, 지지도 술(戌)과 축(丑)으로 온통 흙이다. 흙은 나무가 뿌리내려 양분을 빨아들이는 자리, 곧 갑목이 다루는 재물에 해당한다. 사주가 재물의 기운으로 가득 찬 셈이다.
이제 이 갑목을 도와줄 글자를 찾아본다. 나무를 키우는 물도, 곁을 받쳐 줄 같은 나무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갑목은 뿌리 한 가닥 없이, 너른 흙벌판에 홀로 떨어진 한 그루다.
이 약한 갑목이 그 압도적인 흙을 거스를 길은 없다. 억지로 버티고 서려 해 봐야 부러질 뿐이다. 그래서 갑목은 자기를 고집하길 그만두고, 그 흙의 세력에 자기를 맡긴다. 이것이 재물의 세력을 따르는 종재격(從財格)이다.
이렇게 따르기로 한 다음에는 읽는 눈이 통째로 바뀐다. 이제 사주의 주인은 갑목이 아니라 그 흙이다. 그러니 그 흙을 살리고 흙이 낳는 쪽으로 흐르는 글자가 곱고, 도리어 갑목을 일으켜 세우려는 물이나 나무가 끼어들면 어설프게 버티게 되어 흐름이 흔들린다. 따라가기로 했으면 그 길로 온전히 가야 곱다는 말이, 이 한 장에 그대로 들어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까다로운 단서가 있다. 따르기로 했으면 깨끗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진짜로 따르는 것과 어설프게 따르는 것으로 갈라, 진종(眞從)과 가종(假從)이라 불렀다. 일간에 작은 미련이 남아 어중간하게 버티면, 따르지도 버티지도 못한 채 도리어 흔들린다. 비울 거면 온전히 비워야 그 흐름이 내 것이 된다.
이 어설픈 따름을 가상의 사주 한 장으로 펴 보면 또렷해진다. 실제 누구의 것도 아닌, 설명을 위한 사주다.
시 일 월 년
천간 경 임 병 갑
지지 술 인 인 오
가운데 일간은 임(壬), 물이다. 그런데 지지를 보면 인과 오와 술이 모여 큰 불 무리를 이뤘다. 불은 물인 임수가 다루는 재물이다. 게다가 년간의 갑(甲)이 그 불을 더 지피니, 사주가 온통 재물의 기운으로 쏠렸다. 약한 임수가 홀로 맞설 자리가 아니라, 그 재의 세력을 따라가야 하는 종재의 형국이다.
그런데 시간에 경(庚)이 하나 걸려 있다. 경금은 물을 낳아 주는 인성, 곧 임수를 일으켜 세울 법한 글자다. 본래 이렇게 나를 도울 글자가 곁에 있으면, 일간은 약해도 쉬이 자기를 버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 경금에 힘이 없다는 것이다. 태어난 달이 경금에게는 기운이 빠지는 자리인 데다, 나무는 많아 쇠가 깎이고, 둘레는 온통 불이라 녹아내린다. 나를 도우려 해도 도울 힘이 없는, 있으나 마나 한 한 글자다. 그래서 임수는 끝내 재를 따라가긴 하는데, 곁에 그 무력한 글자가 미련처럼 남아 깨끗이 비우지 못한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따르는 것을 가종재격(假從財格)이라 한다.
진종이 미련 없이 온전히 비운 따름이라면, 가종은 비우지 못한 한 글자가 끝내 걸리는 따름이다. 같은 종재라도 그 결이 이렇게 갈린다.
다만 분명히 해두고 싶다. 따른다는 것이 곧 무력함은 아니다. 어설프게 힘을 부리다 휩쓸려 다치는 것보다, 가장 센 흐름을 알아보고 거기에 자기를 온전히 실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지혜일 때가 있다. 버틸 자리에서 버티고 맡길 자리에서 맡기는 것, 그 분별이 곧 하나의 그릇이다. 종격은 약함의 격이 아니라, 따를 줄 아는 격이다.
고집을 끝까지 부리는 것이 강함인 줄 알았던 때가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버틸 때와 내려놓을 때를 아는 사람이 끝내 더 멀리 가 있곤 했다. 고집을 내려놓는 일이 늘 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종격을 풀다 다시 생각했다.
버팀이 답이 아닐 때가 있다. 가장 센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내 사주는 따라야 하는 자리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내 편이 너무 셀 때 (종왕격과 종강격)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