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는 입춘에 바뀐다
명리에서 한 해와 띠가 바뀌는 기준은 1월 1일도 설날도 아닌 입춘이다. 절기가 달을 가르는 이치와, 시작이란 숫자가 아니라 기운이 트는 자리라는 생각.
새해가 되면 묻는다. 올해는 무슨 띠의 해인가.
그런데 그 "새해"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를 물으면 답이 갈린다. 양력 1월 1일인가, 설날인가. 명리의 답은 둘 다 아니다. 입춘(立春)이다.
입춘은 봄이 서는 날이다.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 겨울 한가운데서 봄 기운이 처음 고개를 드는 지점. 명리는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계절의 실제 기운을 따라 한 해를 끊는다. 그래서 한 해의 첫머리도, 띠가 바뀌는 자리도 입춘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까닭이 있다.
양력 1월이나 2월 초에 태어난 사람을 보자. 달력으로는 분명 새해에 들었는데, 입춘 전이라면 명리에서는 아직 지난해다. 2010년 2월 1일에 태어났다면, 달력은 호랑이해(경인)라 하지만 입춘이 2월 4일이니 이 사람의 띠는 앞 해의 소(축)다. 자기 띠를 평생 잘못 알고 살아온 사람이 드물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왜 하필 입춘인가. 한 해를 가르는 칼이 왜 봄의 문턱에 놓였는가.
여기서 절기(節氣) 이야기가 나온다. 옛사람은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누었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으로 이어지는, 태양의 길을 따라 보름마다 하나씩 매어 둔 계절의 매듭이 절기다. 명리의 열두 달은 바로 이 절기를 따라 끊긴다. 달력의 1일에 새 달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절기가 드는 날 비로소 달이 바뀐다. 입춘에 첫 달인 인월(寅月)이 열리고, 경칩에 다음 달인 묘월(卯月)이 열리는 식이다.
그러니 명리의 한 해는 봄에서 시작해 봄으로 돌아온다. 만물이 깨어나는 그 자리를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는 1월 1일 0시에 한 해가 시작된다고 배웠다. 종이 울리고 폭죽이 터지는 그 순간에. 하지만 그날의 바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땅은 얼어 있고 나무는 잠들어 있다. 숫자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깨어나지 않은 새해다.
명리가 입춘을 첫날로 삼은 것은, 시작이란 숫자가 아니라 기운이 트는 자리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달력을 한 장 넘긴다고 새것이 오지는 않는다. 정말로 새로 시작되는 때는, 얼어 있던 무언가가 안에서 풀리기 시작하는 그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새해를 1월에 한 번, 입춘에 또 한 번 맞는 셈 치기로 한다. 진짜 시작은 아마 두 번째 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