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가장 어두운 데서 빛이 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곧 빛이 되살아나는 출발점이라는 음양의 이치. 옛사람이 동지를 작은 설로 여긴 까닭과, 바닥이 곧 돌아서는 자리라는 생각.
앞에서 한 해가 입춘에 바뀐다고 했다. 그런데 시작점이 하나 더 있다. 동지(冬至)다.
동지는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양력 12월 22일 무렵, 해는 가장 짧게 떴다 지고 어둠이 가장 길게 깔린다. 한 해의 바닥이라 할 만한 날.
그런데 옛사람은 이 가장 어두운 날을 슬퍼하지 않았다. 도리어 여기서부터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데 주목했다. 어둠이 끝까지 차오른 그 순간, 빛이 돌아서기 시작한다. 동지는 어둠의 절정인 동시에 빛의 출발점이다.
명리는 이것을 음양(陰陽)으로 읽는다. 음(陰)이 끝에 닿으면 양(陽)이 되살아난다. 동지는 음이 가장 깊은 날이면서, 바로 그 바닥에서 양 한 가닥이 처음 돋는 날이다. 추위는 동지가 지나야 본격적으로 닥치지만, 빛의 시계는 이미 동지에 방향을 틀어 둔 셈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동지를 작은 설, 아세(亞歲)라 불렀다. 한 해의 진짜 첫날로 여긴 것이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나눠 먹고 한 살을 더 먹었다 친 풍습이 거기서 온다. 붉은 팥으로 어둠과 액을 물리치고, 새로 도는 빛을 맞이하던 마음이다.
명리 안에서 동지가 닿는 자리는 자(子)다. 열두 지지의 첫 글자, 한밤중인 자시(子時)와 한겨울인 자월(子月)을 가리키는 그 글자. 가장 어두운 시각과 가장 추운 달이 왜 시작의 자리에 놓였는가. 답은 같다. 빛은 가장 어두운 데서 돌아서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해의 시작은 동지인가 입춘인가.
둘 다라고 해 두자. 보는 자리가 다를 뿐이다. 동지는 하늘의 시작이다. 태양의 빛이 돌아서는 천문(天文)의 첫날. 입춘은 땅의 시작이다. 그 빛이 땅에 닿아 봄 기운으로 피어나는 지상(地上)의 첫날. 하늘에서 빛이 먼저 방향을 틀고, 그것이 땅 위 계절로 드러나기까지 한 박자가 걸린다. 그 한 박자의 간격만큼, 세상은 가장 추운 때를 지난다.
빛이 가장 먼저 돌아서는 자리는 가장 깊은 어둠 속이다. 이 말은 동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바닥을 쳤다고 느껴질 때, 사실은 그 바닥이 돌아서는 지점일 수 있다. 다만 우리 눈에는 여전히 캄캄할 뿐이다. 동지를 지나도 추위는 그 뒤로 더 매서워지듯, 빛이 돌아선 줄도 모른 채 한참을 더 추운 데서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 그래도 방향은 이미 틀어졌다는 것. 가장 어두운 날에 한 살을 더 먹던 옛사람의 셈법을, 나는 그렇게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