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주, 직접 짚어 보다
태어난 해·달·날·때에 드는 네 별을 직접 짚는 법. 그 네 자리가 가리키는 일생과, 당사주를 맹신도 무시도 않는 눈에 대하여.
앞 글에서 띠마다 별이 하나씩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당사주는 그 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태어난 해·달·날·때, 네 자리 모두에 별이 든다. 이번에는 그 네 별을 직접 짚어 본다.
먼저 알아 둘 것은 열두 별이 도는 순서다. 천귀에서 시작해 천수까지, 이 차례로 끝없이 돈다.
열두 별이 도는 차례 천귀성 → 천액성 → 천권성 → 천파성 → 천간성 → 천문성 → 천복성 → 천역성 → 천고성 → 천인성 → 천예성 → 천수성 → (다시 천귀성)
이 수레바퀴 위에서 네 자리를 차례로 짚어 나간다.
년의 별은 태어난 해의 띠에 걸린 별이다. 앞 글의 표 그대로다. 소띠라면 천액성이 년의 별이 된다.
월의 별은 년의 별을 1월로 놓고, 태어난 달까지 한 칸씩 짚어 나간다. 소띠(천액성)로 음력 시월생이라면, 천액성을 1월로 세어 열 칸을 가 천예성에 닿는다.
일의 별은 이번엔 월의 별을 1일로 놓고, 태어난 날까지 짚는다. 위 사람이 음력 열이튿날생이면 천예성에서 열두 칸, 천인성이 일의 별이다.
시의 별은 일의 별을 자시(子時)로 놓고, 태어난 시각까지 짚는다. 해시(亥時)생이면 천인성에서 열두 칸을 가 천고성에 닿는다.
(달과 날은 모두 음력으로 세고, 시각은 자시를 밤 열한 시 반부터로 잡는 식으로 한 시간 단위를 삼십 분씩 물려 본다.)
그래서 이 사람의 네 별은 이렇게 나온다. 년 천액성, 월 천예성, 일 천인성, 시 천고성.
네 자리는 일생의 굽이를 나눠 맡는다. 년의 별은 초년을, 월의 별은 중년을, 일의 별은 말년을 비추고, 시의 별은 삶 전체를 아우른다. 한 사람 안에서 네 별이 어떻게 어울리느냐로 그 삶의 모양을 그리는 것이다.
이 네 별로 한 사람을 읽어 보자. 초년에 든 천액성은 어린 시절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자리다. 그러나 옛말처럼 액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일찍 겪은 고생이 일찍 사람을 여물게 한다. 중년의 천예성은 재주가 피는 때다. 손끝의 재간이든 표현하는 힘이든, 제 것을 펼쳐 보일 자리가 중년에 열린다. 말년의 천인성은 옛 책이 가장 험하게 적은 별이지만, 그 칼을 다치는 흉기가 아니라 매듭짓는 결단으로 돌려 읽으면, 흐릿하게 끌지 않고 분명하게 거두는 말년이 된다. 그리고 일생을 감싼 천고성. 평생 어딘가 홀로인 마음을 안고 살되, 그 외로움이 남에게 기대지 않고 제 발로 서는 힘이 된다.
험한 별이 셋이나 든 셈인데, 그래서 이 사람의 삶이 불행한가. 그렇게 읽지 않는다. 시련으로 여물어, 재주로 피고, 단단하게 거두며, 끝내 홀로 설 줄 아는 사람. 같은 네 별을 겁으로 읽으면 저주가 되고, 결로 읽으면 한 사람의 단단한 한평생이 된다. 당사주를 보는 눈은 결국 거기서 갈린다.
그러니 별 이름 하나에 너무 무게를 싣지는 말자. 별은 정해진 운명을 못 박는 도장이 아니라, 타고난 바탕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가깝다. 오래 본 사람일수록 당사주 하나에 기대지 않고, 사주 여덟 글자와 견주어 가며 조심스럽게 읽는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당사주는 그 출처부터 묘하다. 이름은 당(唐)나라의 사주라는데, 정작 그 시대의 명리서 어디에서도 같은 이론을 찾기는 어렵다. 언제 누구의 손에서 지금 모습으로 엮였는지가 또렷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불분명함 때문에 가벼이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출처가 흐릿하다는 것과 쓸모가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분명치 않은 내력에도, 이 별 이야기는 오래 살아남아 사람들 곁에 머물렀다.
나는 당사주를 맞다 틀리다로 서둘러 가르지 않는다. 출처가 흐릿한 옛 별 이야기 앞에서도, 한 사람의 삶을 함부로 못 박지 않고 그 바탕을 헤아려 읽으려는 조심스러움. 어쩌면 당사주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쓸모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으로 사람을 보든, 겁이 아니라 결로 보는 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