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해가 곧 나였다
옛 명리는 태어난 해를 사람의 근본으로 삼았다. '나'가 가문과 핏줄에서 시작되던 시대의 사고와, 그 시대가 사주를 읽던 방식을 본다.
오늘 누군가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으면, 우리는 제 이름을 대고 성격을 말하고 하는 일을 말한다. 나라는 사람은 나 하나로 시작해 나 하나로 끝난다.
오래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명리가 막 글자로 운명을 적기 시작하던 무렵, 한 사람의 근본은 그가 태어난 해에 있었다. 사람들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을 간지로 적되, 그중 태어난 해의 두 글자, 곧 연주(年柱)를 사람의 뿌리로 삼았다. 나를 읽으려면 먼저 내가 무슨 해에 났는지를 보았고, 그 해에 깃든 오행과 납음이 어떤 것인지를 따졌다. 달과 날의 글자는 그 해를 받쳐 주는 곁가지로 읽혔다. 한마디로 태어난 해가 곧 나의 큰 줄거리였고, 나머지는 거기 딸린 잔가지였다.
왜 하필 해였을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는 혼자 선 개인이 아니었다. 사람은 먼저 어느 집안의 자손이었고, 어느 핏줄을 이은 후예였으며, 몇 대째 무엇을 해 온 가문의 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값어치는 그 자신의 재주보다 그가 속한 가문에서 먼저 나왔다. 좋은 집안에 나면 그 자체로 좋은 명이었고, 한미한 집안에 나면 아무리 영민해도 그 그늘을 벗기 어려웠다. 그런 세상에서 태어난 해는, 그 사람을 조상과 후손이 길게 이어지는 흐름의 어느 한 자리에 앉히는 좌표였다. 나를 읽는다는 것은 곧 내가 어느 흐름에서 와서 어디쯤 서 있는지를 읽는 일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해를 중심에 두는 방식을 훗날 고법(古法), 곧 옛 법이라 부른다. 대체로 당나라 무렵까지 명리는 이 방식을 따랐다. 사람의 근본이 태어난 해에서 태어난 날로 옮겨 가는 큰 전환은 송나라에 이르러서야 일어나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래된 사고가 지금 우리 안에도 희미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곧잘 "무슨 띠세요" 하고 묻는다. 무슨 띠냐는 물음은 곧 무슨 해에 났느냐는 물음이고, 그것이 한때는 사람의 근본을 묻는 가장 진지한 질문이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같은 기운을 나눠 가진 한 무리로 묶는 그 버릇은, 고법이 세상을 보던 방식의 오래된 그림자다.
지금의 우리는 그 사고가 낯설다. 태어난 해가 나의 근본이라니, 그렇다면 내 개성은 어디로 갔나 싶다. 나는 가문의 한 조각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라고 믿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하지만 고법이 바라보던 자리에는, 우리가 어느새 잊어버린 한 가지가 있었다. 아무도 빈 데서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 이전의 오랜 계보에서 왔고, 내가 미처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끝자리에 서 있다. 고법은 한 사람을 읽기 전에, 먼저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았다. 그 방식이 옳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사람을 늘 홀로 떼어 보는 우리가, 그 시절의 시선에서 한 가지는 되짚어 볼 만하다는 것이다.
참고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서자평」 — 송나라 이전에는 사주에서 연주를 기준으로 명을 읽었다는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