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의 금, 화로 속의 불
같은 금이라도 칼날의 금과 바다 속의 금은 다르다. 육십갑자에 그림을 입힌 납음오행의 세계와, 고법이 그것으로 사람을 읽던 법.
오행을 처음 배우면 그저 다섯이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나무와 불과 흙과 쇠와 물. 그러나 옛사람들은 이 다섯만으로는 사람을 다 담을 수 없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같은 금이라도 다 같은 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칼날에 벼려진 날카로운 금이 있고, 바다 깊이 가라앉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금이 있다. 같은 불이라도 화로 안에서 은근히 타며 쇠를 녹이는 불이 있고, 산 위에서 거세게 번지는 불이 있다. 옛사람들은 육십갑자 하나하나에 이렇게 오행의 성질을 입히되, 거기에 눈에 보일 듯 생생한 그림 한 폭씩을 붙였다. 이것이 납음오행(納音五行)이다.
가령 갑자(甲子)와 을축(乙丑)에는 해중금(海中金), 바다 속의 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병인(丙寅)과 정묘(丁卯)에는 노중화(爐中火), 화로 속의 불이다. 무진(戊辰)과 기사(己巳)는 대림목(大林木), 큰 숲을 이룬 나무다. 이런 식으로 육십갑자를 둘씩 묶어 모두 서른 개의 그림이 펼쳐진다. 바다 속의 금, 화로 속의 불, 큰 숲의 나무, 길가의 흙, 산머리의 불, 시냇물 아래의 물. 이름만 읊어도 한 폭의 풍경이 떠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납음의 오행이 글자 본래의 오행과 곧잘 어긋난다는 점이다. 갑자만 해도 그렇다. 갑(甲)은 본디 나무고 자(子)는 물인데, 둘을 묶은 갑자의 납음은 엉뚱하게도 금, 그것도 바다 속의 금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보아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오행이 그 짝 안에 숨어 있는 셈이다. 어떤 규칙으로 이 숨은 오행이 정해졌는지, 그 셈법의 유래는 지금도 또렷이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납음은 명리 안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구석으로 남아 있다.
이름 하나하나는 작은 시(詩)이기도 했다. 바다 속의 금은 아직 캐어지지 않은 채 잠겨 있는 가능성이고, 화로 속의 불은 갇힌 자리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타오르는 열이다. 길가의 흙은 누구나 밟고 지나는 너른 바탕이고, 큰 숲의 나무는 홀로 선 나무와는 다른 무리의 기상을 지닌다. 같은 글자라도 어떤 그림을 입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고법의 시대에는 이 납음이 사람을 읽는 중요한 실마리였다. 앞 편에서 보았듯 옛 방식은 태어난 해를 근본으로 삼았는데, 그 해의 납음을 곧 그 사람의 바탕으로 여겼다. 바다 속의 금으로 난 사람과 칼끝의 금으로 난 사람은, 똑같이 금의 사람이라도 사뭇 다르게 읽혔다. 나아가 여러 기둥의 납음이 서로 살리는지 누르는지를 견주어 한 생의 풀림과 막힘을 짐작했다. 다섯 글자의 메마른 오행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자리를, 이 서른 폭의 그림으로 메우려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옛 그림들 앞에 서면 묘한 다정함을 느낀다. 그들은 금에게 바다를 주고 불에게 화로를 주었다. 사람을 한 글자에 가두기 싫어서, 그 글자에 풍경을 붙이고 이야기를 입혔다. 사람을 함부로 한 단어로 부르지 않으려던 그 마음이, 차가운 부호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참고
- 위키백과 「납음오행(納音五行)」 — 육십갑자 각 짝에 오행을 입혀 풀이하던 옛 셈법.
- 심괄 『몽계필담(夢溪筆談)』 — 송대 학자가 납음의 유래를 두고 "그 뜻을 알기 어렵다"고 적은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