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허중, 일간 이전의 사람
한유가 묘지명을 남긴 옛사람 이허중. 태어난 날의 천간을 오롯이 '나'로 삼기 이전, 고법은 사람을 실제로 어떻게 읽었나.
이름 하나를 불러 본다. 이허중(李虛中).
당나라 사람이다. 벼슬을 지냈고,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읽는 데 누구보다 밝았다고 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던 한유(韓愈)가 그의 묘지명을 지었다. 한유가 누구인가. 훗날 당송팔대가의 첫머리에 놓이는, 한 시대의 글을 대표하던 사람이다. 그런 이가 붓을 들어 한 사람의 생애를 새겼다는 것은, 이허중이 당대에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 묘지명이 한유의 문집에 실려 전해진 덕에, 우리는 천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이허중이라는 사람을 안다. 후대에 명리를 공부한 이들이 한결같이 그를 이 학문의 먼 시조로 떠받든 것도 그 글에 기댄 바가 크다.
이허중은 무엇을, 어떻게 보았나.
그는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를, 그리고 거기 깃든 납음을 살펴 그 사람이 귀할지 천할지, 오래 살지 일찍 갈지를 헤아렸다고 한다. 여기서 짚어 둘 대목이 있다. 그가 본 중심은 여전히 태어난 해였다는 점이다. 옛 기록은 그의 방식을 두고 해가 근본이 되고 날이 주인이 된다고 적었다. 해를 뿌리로 삼되 날도 함께 보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허중은 태어난 해만 보던 더 오랜 방식과, 태어난 날을 '나'로 세우는 뒷날의 방식, 그 둘 사이에 선 사람이었다. 오늘 우리가 사주를 풀 때처럼 태어난 날의 천간 하나를 오롯이 '나'로 삼는 자리에는, 그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단 명리서도 전한다.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다. 옛 기록은 이 책을 두고 본래 귀곡자(鬼谷子)라는 옛 인물의 글에 이허중이 풀이를 단 것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다만 이 책이 정말 이허중 본인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후대 사람이 그의 이름을 빌려 엮은 것인지를 두고는 지금도 말이 갈린다. 그러니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곧장 이허중의 육성으로 여기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니까 이허중은 후대가 명리의 시조로 떠받든 고법의 대표 인물이자, '나'라는 글자가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자리에 놓이기 전의 사람이다. 같은 명리라도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가 그때와 지금은 이렇게 달랐다.
이허중을 떠올리면, '나'라는 것이 늘 같은 곳에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자리, 곧 태어난 날의 그 한 글자조차, 누군가 그것을 거기로 옮겨 놓기 전에는 다른 데 있었다. 당연한 것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적은 없다. 명리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 자꾸 이 사실 앞에 멈추게 된다.
참고
- 위키백과 「한유(韓愈)」 —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허중의 묘지명을 지음.
- 위키백과 「이허중(李虛中)」 — 당대의 명리학자로, 해를 근본으로 삼되 날을 함께 보던 고법의 대표 인물.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 — 이허중의 이름을 단 명리서, 후대 위탁 여부에 대한 논의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