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평, 기준을 바꾸다
'나'의 자리가 태어난 해에서 태어난 날로 옮겨 간 사건. 그 한 걸음이 사주 읽는 법을 어떻게 통째로 바꿨는가.
이 시리즈에 단 하나의 사건만 남겨야 한다면, 이것이다.
'나'의 자리가 옮겨졌다.
무슨 말인지 풀어 보자. 앞 시대, 그러니까 대체로 당나라 무렵까지 사람의 근본은 태어난 해에 있었다. 나를 읽으려면 먼저 내가 어느 핏줄, 어느 가문에서 왔는지를 보았다. 태어난 해가 곧 나의 뿌리였고, 달과 날은 그 해에 딸린 곁가지로 읽혔다. 그런데 송나라에 들어서며 무게중심이 슬그머니 옮겨 간다. 명을 읽는 으뜸 자리가 태어난 해에서 태어난 날의 천간으로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태어난 날의 천간, 곧 일간(日干)이 '나'가 되었다.
글자 한 칸 옮긴 일처럼 보이지만, 이 한 걸음이 사주 읽는 법을 통째로 바꾸었다.
일간이 '나'가 되자, 사주에 적힌 나머지 일곱 글자가 더 이상 따로 노는 글자가 아니게 되었다. 저마다 그 '나'와 어떤 사이인지로 다시 읽혔기 때문이다. 명리는 이 사이를 다섯 갈래로 갈랐다.
나를 낳아 주고 보살피는 글자가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나를 길러 주는 기운이다. 배움과 보살핌, 기댈 언덕이 여기서 읽혔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 글자가 있다. 나와 같은 무리, 형제이자 동료이며 때로는 다투는 경쟁자다.
내가 낳아 밖으로 내보내는 글자가 있다. 내 안에서 세상으로 흘러나가는 것, 곧 재주와 표현이다.
내가 다스리고 손에 쥐려는 글자가 있다. 재물이 여기에 든다.
거꾸로 나를 누르고 다그치는 글자가 있다. 나를 단속하는 힘이니, 규율과 직책과 명예가 여기서 나온다.
이 다섯 갈래의 사이는 음과 양에 따라 다시 둘로 갈려 모두 열이 되는데, 이를 훗날 십성(十星)이라 부르게 된다. 그 뿌리가 바로 여기, 일간을 '나'로 세운 이 자리에서 났다. 사주를 푼다는 것은 이제 이 관계의 그물을 읽는 일이 되었다. 한 사람의 운명이 '나는 세상의 무엇과 어떻게 얽혀 있는가'라는 한 장의 지도로 펼쳐진 것이다. 부모도 자식도, 재물도 명예도 모두 그 지도 위에서 제자리를 얻었다. 오늘 우리가 사주를 보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고, 그 출발점이 여기다.
이 전환의 한복판에 서자평(徐子平)이라는 이름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본래 이름은 서거이(徐居易)였고, '자평'은 그의 자(字)였다. 사람들은 그의 자를 따 이 학문을 자평명리라 불렀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주를 본다고 할 때 그 사주가 바로 이 자평명리다.
다만 그가 정확히 언제 사람인지는 또렷이 전하지 않는다. 흔히 오대(五代)가 저물고 송나라가 열리던 무렵의 인물로 본다. 생몰의 연도를 콕 집은 기록은 없으니, 누가 그의 생년을 단정한다면 그것은 지어낸 것이기 쉽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있다. 어느 날 서자평 한 사람이 기준을 단번에 갈아 치운 것이 아니다. 일간을 중심에 두는 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천천히 자리 잡았고,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널리 퍼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남송이 저물어 가던 무렵, 서대승(徐大升)이라는 술사가 그 이치를 『자평삼명통변연원(子平三命通辯淵源)』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의 머리말에 남송 이종 때의 연호인 보우(寶祐)가 보이는데, 보우 연간이 1253년부터이니 이 무렵 책이 모습을 갖춘 셈이다. 책은 두 권으로, 윗권은 명을 살피는 법을, 아랫권은 열여덟 가지 격(格)을 담았다. 서자평에게서 비롯한 물줄기가 서대승에 이르러 비로소 강이 된 것이다.
왜 하필 태어난 날이었을까. 여기서부터는 단정이 아니라 헤아림이다. 해가 가문과 핏줄의 자리라면, 날은 그보다 훨씬 더 그 사람 한 명에게 가까운 자리다. 마침 송나라는 가문보다 제 능력으로 일어선 사대부들이 새 주인공으로 떠오르던 시대였다. 핏줄이 곧 사람이던 세상이 저물고 한 개인이 제 운명의 주인으로 올라서던 그 공기를, 명리의 이 전환은 닮았다. 사람을 읽는 첫 글자가 가문에서 개인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뒷날을 돌아보며 그려 보는 풀이일 뿐, 못 박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풀이를 걷어 내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는다. 명리에서 '나'가 어디에 앉느냐는 한 번도 자연이 정해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정했고, 그래서 사람이 옮겼다. 가장 근본인 '나'의 자리마저 한 번 통째로 옮겨졌다면, 명리의 다른 무엇인들 영영 그대로일 리 없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명리를 손댈 수 없는 완성된 진리로 떠받들 일도, 케케묵은 미신으로 깎아내릴 일도 아니게 된다. 그것은 시대를 따라 제 기준을 고쳐 온, 살아 있는 학문이었다.
참고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서자평(徐子平)」 — 연주에서 일간으로의 전환, 서거이(자 자평)의 내력, 서대승과 『자평삼명통변연원』 및 보우 연간(1253~)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