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가 책이 되다
『자평진전』·『적천수』·『궁통보감』. 같은 사주를 두고 격국·균형·조후라는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선 세 고전의 시대.
'나'의 자리가 태어난 날로 옮겨진 뒤, 명리에는 또 하나의 큰일이 일어났다. 입에서 입으로, 스승에서 제자에게로만 건네지던 이치가 책으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명나라와 청나라를 지나며 오늘날 고전이라 불리는 글들이 나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사주를 펼쳐 놓고도 책마다 들어가는 문이 달랐다. 명리라는 한 채의 집에 세 개의 다른 문이 났다고 해도 좋겠다.
첫째 문은 『자평진전(子平眞詮)』이다. 청나라가 번성하던 18세기 중반, 진사를 지낸 심효첨(沈孝瞻)이 남긴 글이다. 본디 『자평수록(子平手錄)』이라 불린 그의 친필 원고가, 그가 떠난 뒤 책으로 간행되며 『자평진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책이 보는 것은 사주의 짜임새다. 한 사람의 사주에서 가장 힘 있는 기운을 가려 그 사주가 어떤 유형인지, 곧 격(格)을 세운다. 그러고는 그 격이 반듯하게 짜였는지 어딘가 일그러졌는지로 사람의 그릇과 쓰임을 읽는다. 이것을 격국론이라 한다. 집으로 치면 골격을 세우는 일이다. 기둥과 들보가 어떻게 짜였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 그것이 자평진전이 연 문이다.
둘째 문은 『적천수(滴天髓)』다. 이 책은 유형을 세우기보다, 사주 안에서 오행의 기운이 매끄럽게 흐르는지 어딘가 막히고 치우쳤는지를 본다. 어떤 기운이 지나치게 세면 눌러 주고 너무 약하면 북돋워, 사주 전체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고르게 서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둔다. 한쪽으로 기운 저울을 다시 맞추는 일에 가깝다. 그 원문을 명나라 건국을 도운 책사 유백온(劉伯溫)이 지었다고 흔히 전하나, 정작 누가 지었는지를 두고는 지금도 말이 갈린다. 송말원초의 경도(京圖)라는 인물을 원저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훗날 청나라의 임철초(任鐵樵)가 여기에 자세한 풀이와 숱한 사주 사례를 더한 주석본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가 특히 널리 읽혔다.
셋째 문은 『궁통보감(窮通寶鑑)』이다. 이 책이 보는 것은 사주의 차고 더움이다. 추운 겨울에 난 사람에게는 그를 데워 줄 따뜻한 기운이 약이 되고, 무더운 여름에 난 사람에게는 그를 식혀 줄 서늘한 기운이 약이 된다. 이렇게 태어난 계절의 기울기를 헤아려 무엇으로 그 사람의 기후를 고르게 할지를 본다. 이를 조후(調候)라 한다. 다만 이 책은 엮인 경위가 복잡하다. 여춘태(余春台)라는 이가 묶어 펴낸 것을 뒷날 서락오(徐樂吾)가 다시 손질해 세상에 널리 알린 것으로 전할 뿐, 처음 지은 이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를 함부로 못 박지 않는다.
같은 여덟 글자를 두고도 자평진전은 짜임새를, 적천수는 기운의 균형을, 궁통보감은 계절의 기후를 본다. 세 권의 책이 저마다 다른 문으로 같은 방에 들어선 셈이다. 그래서 후대에는 어느 문이 옳으냐를 두고 자평진전파니 적천수파니 하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을 온전히 보려면 골격도, 균형도, 기후도 모두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 문은 서로를 부정하기보다 채워 주는 사이에 가깝다.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다. 어떤 앎이 책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한 스승만의 비밀이 아니게 된다. 누구나 펼쳐 읽고, 따져 묻고, 틀렸다 말하고, 제 의견을 보탤 수 있게 된다. 명리가 한낱 점술을 넘어 학문이라 불릴 수 있다면, 그 시작은 아마도 명리가 기꺼이 책이 되어 사람들의 반박 앞에 제 몸을 내놓은 그 순간일 것이다. 따져 물을 수 있는 것만이 학문이 된다.
참고
- 위키백과 「자평진전(子平眞詮)」 — 청나라 심효첨(沈孝瞻)이 격국론을 정리한 명리 고전.
- 위키백과 「적천수(滴天髓)」 — 오행의 균형을 중심에 둔 명리 고전, 저자는 유백온(劉伯溫) 설과 경도(京圖) 설로 갈림. 청대 임철초 주석본 『적천수천미』가 널리 알려짐.
- 위키백과 「궁통보감(窮通寶鑑)」 — 조후를 중심에 둔 명리 고전, 여춘태(余春台) 편·서락오(徐樂吾) 윤색본이 세상에 알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