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에 자리한 속, 토(土)와 건강
다섯 기운의 한가운데, 토. 비장과 위장에 깃든 흙의 기운으로, 그것이 약해 헤집힐 때와 넘쳐 막힐 때 속이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관점으로 읽는다.
몸을 다섯 기운으로 보는 그 눈으로, 이번에는 토(土)를 들여다본다.
토(土)는 만물을 받아 안고 길러 내는 기운이다. 무엇이든 품어 삭이고 다시 내어주는 땅. 그 기운이 몸에서 머무는 자리가 비장과 위장, 곧 먹은 것을 삭이는 속이다. 받아들이고 삭여 내는 성질을 따라, 토(土)는 우리 몸 한가운데에서 기운을 갈무리한다.
위장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 받아 삭이는 일이 막힘없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들인 것을 잘 삭여 온몸으로 나누어 주듯이. 반대로 이 흙이 어긋날 때, 몸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첫째는 토(土)가 약해 헤집힐 때다.
목(木)은 토(土)를 다스린다. 나무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관계다. 알맞으면 흙을 일구어 숨 쉬게 하지만, 그 파고듦이 지나치면 흙이 헤집어진다. 토(土)의 기운이 약한데 목(木)이 너무 거세면, 토(土)의 장부인 비장과 위장이 먼저 지친다. 옛 명리는 이때 입맛이 없고, 먹으면 더부룩하며, 자주 체하거나 속이 쓰리다고 보았다. 받아 삭여야 할 기운이 헤집어지니, 그 신호가 속에서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반대다. 토(土)가 너무 넘칠 때다.
흙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 흙은 굳고 막힌다.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못하니, 몸 안에 쓰지 못한 것이 고인다. 옛 명리는 이때 몸이 무겁고, 잘 붓고, 무엇을 먹어도 더부룩하게 가라앉는다고 보았다. 토(土)가 다스리는 물길마저 막혀, 흐르지 못한 것이 안에 쌓이는 것이다.
마음도 같은 줄에 꿰여 있다.
토(土)에 얽힌 감정은 근심이다. 한 가지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는 근심이 쌓이면 속이 막힌다. 걱정이 많은 날 입맛이 없고 속이 더부룩한 것이 그렇다. 거꾸로 속이 막히면, 마음도 무거워 자꾸 잡생각에 잠긴다.
물론 이것은 진단이 아니다. 속이 자주 더부룩하다고 사주부터 펴 단정할 일이 아니라, 거듭되는 신호라면 먼저 의사를 찾는 것이 맞다. 위의 이야기는 옛사람이 몸을 하나로 보던 사고방식일 뿐이다.
그 사고방식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것이 있다.
토(土)는 무엇이든 받아 삭이는 기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소식과 일과 걱정을, 미처 삭이지 못한 채 자꾸 더 들인다. 받기만 하고 삭이지 못한 것은 몸 한가운데에 그대로 고여, 속을 무겁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늘 무언가에 시달리던 사람이 어느 날 입맛을 잃고 속이 더부룩한 것은, 미처 삭이지 못한 것들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운데가 묵직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이기를 잠시 멈추고 비우는 일이다. 새 걱정을 더 얹기 전에 묵은 것을 한 번 삭이고, 곱씹던 생각을 내려놓고, 속을 한 번 비워 두는 일. 잘 받아들이는 일만큼이나, 받은 것을 제때 삭이고 비우는 일이 속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