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올라 위로 향하는 빛, 화(火)
다섯 기운의 두 번째, 화. 타올라 사방을 밝히는 빛과 열의 기운으로, 받아서 건네고 다스려질 때 비로소 오래가는 불을 읽는다.
목(木) 다음은 화(火)다. 나무가 자라 끝내 불을 일으키니, 목(木)이 낳은 자식이 곧 화(火)다.
화(火)는 불이다. 정확히는 타올라 위로 솟구치는 기운이다. 옛사람은 이 성질을 염상(炎上), 불꽃이 위로 오름이라 했다. 무엇이든 환히 밝히고, 뜨겁게 데우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어둠을 몰아내고 만물을 드러내는 빛, 그것이 화(火)다.
계절로는 한여름이고, 하루로는 해가 가장 높은 한낮이다. 방향으로는 뜨거운 남쪽, 빛깔로는 붉은색이다. 무언가가 가장 밝게 드러나고 활짝 펼쳐지는 자리에는 늘 화(火)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화(火)인 사람은 밝고 뜨겁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좋으면 좋다고 환하게 드러낸다.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고, 가는 곳마다 분위기를 달군다. 옛사람은 화(火)의 덕을 예(禮)라 보았다. 빛이 어둠을 밝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환히 비추듯, 화(火)에는 서로를 알아보게 하고 예의로 잇는 밝음이 있다.
같은 화(火)라도 두 얼굴이 있다. 만천하를 비추는 태양 같은 불과,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을 비추는 등불 같은 불이다. 앞엣것이 병(丙)이고 뒤엣것이 정(丁)이다. 그 둘의 차이는 천간 편에서 따로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둘을 아우르는 화(火)를 본다.
화(火) 역시 혼자 타오르지 않는다.
불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탈 것이 있어야 한다. 나무가 있어야 불이 붙으니, 목(木)이 화(火)를 낳는다. 화(火)는 제가 가진 빛이 제 것인 양 타오르지만, 실은 누군가 건넨 장작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은 다 타고 나면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화(火)가 토(土)를 낳는다. 받아서 태우고, 태운 것을 다시 땅에 건네는 자리가 화(火)다.
다스리는 관계도 있다. 화(火)는 금(金)을 다스린다.
불은 쇠를 녹인다. 그러나 이 녹임은 부수는 것이 아니다. 무쇠는 불을 거쳐야 비로소 칼이 되고 쟁기가 된다. 화(火)가 금(金)을 누르는 것은, 단단한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다시 빚는 일이다.
그리고 화(火)는 수(水)에게 다스려진다. 물이 불을 끈다. 이 또한 해코지가 아니다. 다스려지지 않는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끝내 자기마저 태워 버린다. 물이 불을 식혀 주기에, 불은 활활 타다 사그라드는 대신 알맞은 온기로 남는다. 화(火)에게 수(水)는 적이 아니라, 그 열을 오래가게 해 주는 손이다.
그러니 화(火)도 홀로 타오르는 기운이 아니다. 목(木)에게서 불씨를 받아, 토(土)에게 재를 건네고, 금(金)을 다듬으며, 수(水)에게 다스려진다. 그 관계들 속에서 화(火)는 비로소 빛이 된다.
이제 지금을 본다.
지금은 환하게 타오르는 사람을 떠받드는 시대다. 더 뜨겁게, 더 화려하게, 더 눈에 띄게. 열정은 클수록 좋고, 빛은 밝을수록 인정받는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람이 멋져 보인다.
그러나 끝없이 타오르기만 하는 불은 빠르게 사그라든다.
태울 것을 건네받지 못한 불은 곧 꺼지고, 식혀 줄 손이 없는 불은 자기를 다 태워 재만 남긴다. 우리가 흔히 번아웃이라 부르는 자리가 거기다. 활활 타는 일만큼이나, 무엇으로 그 불을 지피고 무엇으로 식힐지가 중요하다.
오래가는 것은 가장 거세게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다스려져 온기로 남는 불이다. 한 철을 환히 밝히고 꺼지는 모닥불보다, 겨우내 방을 데우는 잔불이 더 멀리 사람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