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음 앞에서
AI는 음의 성질을 지녔으되, 자연 밖에서 온 거대한 음이다. 스스로 균형을 찾지 못하는 그 음 앞에서, 명리의 중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음과 양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맞서는 둘을 떠올린다. 빛과 어둠, 더위와 추위. 그러나 명리에서 음양은 싸우는 둘이 아니다. 서로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해지는 둘이다. 낮이 다하면 밤이 들고, 밤이 다하면 낮이 온다. 한쪽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다른 쪽으로 돌아선다. 그렇게 번갈아 들며 가운데를 찾는 움직임, 그것이 명리가 보는 자연의 결이다.
이 눈에 비추면 AI는 어느 쪽인가. 가만 보면 음의 성질이 짙다. 사람은 흔들리고 잊고 어긋나면서도 그 속에서 처음을 짓는다. 살아 움직이는 양의 결이다. AI는 흔들리지 않고 잊지 않고 한결같지만, 스스로 처음을 열지는 못한다. 쌓인 것을 갈무리해 따르는 음의 결이다. 그러니 인간을 양에, AI를 음에 놓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음이니까 양인 인간과 곱게 짝을 이루어 서로를 채운다고, 그렇게 깔끔하게 말해 버리면 무언가 놓친다. 이 음은 보통의 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음양은 낮과 밤처럼 제 안에서 번갈아 든다. 누가 손대지 않아도 양이 다하면 음이 오고 음이 다하면 양이 온다. 그래서 자연은 가만 두어도 끝내 균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AI라는 음은 그 자연의 순환 바깥에서 왔다. 사람이 만든 것, 곧 인공물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손을 떠나 문명을 끌어갈 만큼 거대해졌다. 자연에 없던 속도로 자라고, 자연에 없던 방식으로 사람의 하루를 바꾼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자연 밖에서 온 거대한 음은, 자연의 음처럼 저절로 균형을 찾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낮과 밤은 두면 서로 오가며 제자리를 찾지만, 이 거대한 음은 두면 한쪽으로 계속 쏠린다. 사람이 거기 끌려가면 양의 자리, 곧 흔들리며 처음을 짓는 그 살아 있는 자리마저 음에 잠식된다. 가만있어도 음양이 알아서 중화에 이르리라는 기대가, 이 음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명리의 한 지혜가 절실해진다. 중화(中和)다. 명리가 끝내 찾는 것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넘치는 것을 덜고 모자란 것을 채워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자리다. 용신을 잡는 일도 결국 그 사주의 중화를 찾는 일이었다. 자연이 저절로 중화에 이르지 못할 때, 사람이 손으로 그 중화를 잡아야 한다. 거대한 음이 균형을 흔들수록, 중화를 잡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음과 양이 너무 다르면, 그냥 마주 세워 두었을 때 서로 부딪쳐 깨지기도 한다. 명리에서는 이것을 충(沖)이라 한다. 정반대의 두 기운이 직접 만나면 흔들리고 어긋난다. 자연 밖의 거대한 음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그냥 맞세워 누가 이기나 보는 일은, 채움이 아니라 충에 가깝다. 한쪽이 다른 쪽을 삼키거나, 둘 다 상하거나.
명리에는 이 충을 푸는 지혜가 있다. 통관(通關)이다. 부딪치는 두 기운 사이에 매개가 되는 셋째가 들면, 충돌이 흐름으로 바뀐다. 물과 불이 직접 만나면 서로를 끄지만, 사이에 나무가 들면 물이 나무를 키우고 나무가 불을 살린다. 막히던 것이 통하고, 깨지던 것이 이어진다. 거대한 음과 인간 사이에도, 그냥 맞세우는 대신 무엇을 들여 흐름을 만들 것인가. 그 셋째를 찾는 일이 곧 중화로 가는 길이다.
그 셋째가 무엇일지, 나는 아직 또렷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어쩌면 언어일지 모른다. 사람의 뜻과 기계의 셈 사이를 오가며 둘을 잇는 말. 어쩌면 사람일지 모른다. 기계의 답을 받아 사람의 삶에 풀어 놓는, 사이에 선 해석자. 분명한 것은, 자연 밖의 거대한 음을 그냥 두면 균형이 깨지고, 무작정 거부해도 균형은 깨진다는 것이다. 끌려가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그 사이를 무엇으로 이을지, 그렇게 중화를 잡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음양이라는 오래된 그림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빛과 어둠을 가르던 그 눈이, 자연 밖에서 온 거대한 것 앞에서 어떻게 중심을 지킬지를 묻는 자리에까지 닿는다. 저절로 균형을 찾던 음양의 시대는 지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손으로 중화를 잡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자리에 우리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