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서늘하고 속은 뜨거운 것, 사(巳)
여름이 시작되는 사. 차게 보이나 속으로 타오르는 불, 허물을 벗는 뱀의 기운으로, 드러내지 않는 열정을 읽는다.
진(辰) 다음에 사(巳)가 온다. 여름의 문턱이다.
사(巳)는 음력 사월, 입하(立夏) 무렵이다. 봄기운이 물러나고 더위가 막 시작되는 때. 시간으로는 한낮에 다가서는 늦은 오전, 사시(巳時)다. 띠로는 뱀. 차가운 비늘 속에 뜨거운 기운을 감춘 그 짐승이 사(巳)를 잘 보여준다.
오행으로 사(巳)는 불(火)이다. 그러나 만천하를 비추는 큰 불이 아니라, 안으로 모인 불이다. 겉으로는 서늘해 보여도 속에서 조용히 타오른다. 뱀이 햇볕 없이도 제 체온을 다스리듯, 사(巳)의 열은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깊다.
그래서 사(巳)인 사람은 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다.
표정은 차분한데 머릿속은 빠르게 돈다. 직관이 날카롭고, 한번 파고든 일에는 무섭게 집중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고 새 몸으로 거듭나듯, 사(巳)는 한 시기를 매듭짓고 다른 자신으로 옮겨가는 데 능하다. 겉의 고요함에 속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다만 속을 너무 감추면 가까운 이마저 그 마음을 읽지 못해 멀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오늘로 건너온다.
지금은 감정을 곧장 드러내라고 부추기는 시대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즉시 표현하는 사람이 솔직하고 건강하다고 여겨진다. 속을 묻어두는 사람은 답답하거나 음흉하게 보이기 쉽다.
그러나 모든 뜨거움이 겉으로 타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요란한 불은 빨리 사그라들지만, 속으로 모인 불은 오래간다. 말없이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사람의 속에서, 나는 종종 가장 뜨거운 열을 본다. 드러내지 않는다고 식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