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갈무리하는 마른 땅, 미(未)
여름의 끝에 선 미. 곡식이 여물어 가는 늦여름 마른 땅의 기운으로, 거두기 직전 무르익는 시간의 인내를 읽는다.
오(午) 다음에 미(未)가 온다.
오(午)가 한여름의 절정이었다면, 미(未)는 그 여름이 끝으로 기우는 늦여름이다. 음력 유월, 더위가 한풀 꺾이며 곡식이 여물어 가는 때. 시간으로는 한낮을 막 지난 이른 오후, 미시(未時)다. 띠로는 양. 무리 지어 천천히 풀을 뜯는 그 온순한 짐승이 미(未)를 닮았다.
오행으로 미(未)는 흙(土)이다. 진(辰)의 촉촉한 봄 흙과 달리, 미(未)는 한여름 햇볕에 달구어진 마르고 더운 땅이다. 물기는 줄었지만, 그 메마름 속에서 곡식은 단단하게 여문다. 미(未)는 거두기 직전의 흙, 결실을 코앞에 둔 땅이다.
그래서 미(未)에는 무르익는 힘이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 양 떼가 천천히 들판을 옮겨가듯, 미(未)인 사람은 느긋하고 온화하다. 모나지 않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좀처럼 다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고집이 들어 있다. 마른 땅이 겉으로 무던해 보여도 속으로 단단하듯이.
다만 결단을 미루다 때를 놓치기도 하고, 메마른 땅처럼 정이 줄어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지금은 거두는 일보다 벌이는 일을 떠받드는 시대다. 새로 시작하고, 더 키우고,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한다. 무언가를 천천히 익혀 마무리하는 시간은 굼떠 보이고, 끝을 향해 차분히 다가가는 일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거두지 않은 곡식은 끝내 제 것이 되지 못한다.
씨를 뿌리는 봄만큼이나, 묵묵히 여물기를 기다리는 늦여름도 귀하다. 무르익는 데에는 마른 땅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두어 본 사람만이 그 더위 속 기다림의 값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