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곳 없는 빛, 병화(丙火)
하늘에 떠 만물을 비추는 태양, 병화. 숨김없이 빛나는 불의 기운으로, 끝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를 읽는다.
세 번째 글자는 병(丙), 불(火)이다.
같은 불이라도 병(丙)은 가장 큰 불, 하늘에 뜬 태양이다. 촛불이나 화롯불이 아니다. 만물을 차별 없이 비추는,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인 거대한 빛.
태양은 날것의 불이다. 사람이 켜거나 끄지 못한다. 다듬을 수도, 가둘 수도 없다. 그냥 떠올라 온 세상을 환히 비추고, 때가 되면 진다. 갑(甲)의 큰 나무가 그러했듯, 병(丙)의 태양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기운이다.
그래서 병(丙)인 사람에게는 숨김이 없다.
기쁘면 얼굴에 다 드러나고, 화가 나도 감추지 못한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과는 정반대다. 밝고, 뜨겁고, 솔직하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푼다. 태양이 제 빛에 값을 매기지 않는 것처럼.
빛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빛에는 그늘이 없다.
태양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숨을 곳이 없다. 병(丙)의 밝음은 곧 그의 약점이기도 하다. 비밀을 품지 못하고, 속을 다 내보이다 상처받고, 너무 환히 타올라 끝내 스스로를 태운다.
이제 지금을 본다.
지금처럼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도 드물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끊임없이 밝혀야 존재가 증명되는 듯한 세상이다. 모두가 작은 태양이 되라고 떠밀린다. 더 밝게, 더 자주, 더 환하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태양조차도 진다. 온 세상을 비추던 빛도 저녁이면 물러나 어둠에게 자리를 내준다. 늘 빛나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가 자주 잊는 사실이다. 드러내는 일에도 쉼이 필요하다.
지는 법을 아는 빛만이 다음 날 다시 떠오른다. 늘 환하게 타오르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가 가끔은 저물 줄도 알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