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비추는 불, 정화(丁火)
태양이 진 자리에 켜지는 작은 불, 정화. 어둠 속 한 사람을 비추는 등불의 기운으로, 큰 빛이 되라는 시대를 거슬러 읽는다.
병(丙) 다음에 정(丁)이 온다.
같은 불이라도 모습은 사뭇 다르다. 병(丙)이 하늘에 뜬 태양이라면, 정(丁)은 사람이 켜는 작은 불이다. 촛불, 등불, 화롯불, 그리고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
정(丁)은 다듬어진 불이다. 태양처럼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심지에 불을 붙여야 비로소 켜진다. 사람의 손이 만든 불, 사람을 위해 켜진 불. 갑(甲)과 병(丙)이 날것의 자연이었다면, 을(乙)과 정(丁)에는 손길이 닿아 있다.
작은 불이라고 약한 것이 아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추지만, 정작 어두운 밤 책상 앞을 비추는 것은 작은 등불이다. 태양은 모두를 향하고, 등불은 한 사람을 향한다. 정(丁)의 빛은 넓지 않은 대신 깊다. 한곳을 오래, 가만히 비춘다.
그래서 정(丁)인 사람은 겉은 차분해도 속이 뜨겁다.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곁에 있는 사람을 묵묵히 챙기고, 한 가지 일에 오래 마음을 쏟는다. 헌신이라는 말이 정(丁)에게는 어울린다.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따뜻한 불, 그것이 정(丁)이다.
이쯤에서 지금을 생각한다.
모두가 태양이 되라고 떠밀리는 시대다. 더 크게, 더 밝게,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라고. 그 빛의 경쟁 속에서 작은 불은 초라해 보이기 쉽다. 겨우 한 사람을 비추는 등불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를 끝내 살린 것은 태양이 아니었다.
가장 어두웠던 밤, 곁에서 꺼지지 않고 켜져 있던 작은 불 하나. 만 명에게 닿는 빛보다, 나 한 사람을 가만히 비춰준 그 불을 우리는 더 오래 기억한다.
모두를 비추지 못해도 괜찮다. 한 사람을 끝까지 비추는 일이, 어쩌면 태양이 되는 일보다 어렵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