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땅, 무토(戊土)
다섯 번째 글자 무토. 만물을 떠받치는 큰 산의 기운으로,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시대에 무게와 신용의 값을 읽는다.
다섯 번째 글자는 무(戊), 흙(土)이다.
같은 흙이라도 무(戊)는 가장 큰 흙이다. 너른 들판, 높은 산, 강물을 막아 세운 제방. 발밑에 늘 있어 우리가 잊고 사는 그 거대한 땅이 무(戊)다.
산은 날것의 자연이다. 누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억겁의 시간이 빚어 거기 그렇게 서 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산은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무(戊)의 첫 번째 성질이 거기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
그래서 무(戊)인 사람은 듬직하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한번 맡은 것을 끝까지 진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산이 늘 그 자리에 있어 길 잃은 이의 이정표가 되듯이. 믿음(信)이라는 글자가 무(戊)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느리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무(戊)인 사람도 그렇다. 새로운 것에 더디고, 한번 정한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듬직함과 답답함은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기댈 수 있어서 미덥고, 꿈쩍하지 않아서 고지식하다.
이제 지금을 본다.
지금은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시대다. 유행은 한 철을 못 넘기고, 어제 옳던 말이 오늘 우스워진다. 사람들은 더 빠르게 갈아타고 더 가볍게 움직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것은 굼떠 보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시대에 뒤처져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가벼이 흔들릴수록,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의 무게는 오히려 귀해진다.
어디에 발 디뎌야 할지 모를 때 우리가 찾는 것은 결국 단단한 땅이다. 변하지 않아서 믿을 수 있는 사람, 늘 그 자리에 있어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가벼움이 미덕이 된 시대에, 무(戊)는 무겁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이 온통 흔들릴 때 그래도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 하나. 그런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이 요즘은 얼마나 드문 행운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