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흐르는 큰 물, 임수(壬水)
아홉 번째 글자 임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흐르는 바다와 큰 강의 기운으로, 한곳에 머물기 어려워진 시대의 자유와 불안을 읽는다.
아홉 번째 글자는 임(壬), 물(水)이다.
물이라도 임(壬)은 가장 큰 물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도도히 흐르는 큰 강,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작은 시냇물이 아니라, 모든 물이 마침내 모여드는 거대한 물이 임(壬)이다.
바다는 날것의 물이다. 사람이 가두거나 길들일 수 없다. 댐을 쌓아도 강은 결국 제 길을 찾아 흐르고, 바다는 어떤 그릇에도 담기지 않는다. 임(壬)의 첫 번째 성질이 거기 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
그래서 임(壬)인 사람은 자유롭고 총명하다.
한곳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흘러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이 지형을 따라 모양을 바꾸듯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머릿속에는 늘 생각이 흐른다. 바다가 온갖 강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듯, 임(壬)은 품이 넓다. 깊고 너른 사람이다.
그러나 깊은 물은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어디로 흐를지 종잡을 수 없고, 너무 자유로워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큰 물에 휩쓸리듯 자기 흐름을 잃기도 한다. 넓다는 것은 때로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지금을 생각한다.
지금은 한곳에 머물기 어려운 시대다. 직장도, 도시도, 관계도 흐르듯 옮겨 다닌다. 한자리에 뿌리내리는 삶보다, 가볍게 흘러 다니는 삶이 자연스러워졌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자유. 그러나 그 자유 뒤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흐르는 것과 떠밀리는 것은 닮았지만 다르다.
스스로 길을 골라 흐르는 물과 그저 물살에 떠내려가는 물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다르다. 임(壬)은 자유로운 흐름이지, 정처 없는 표류가 아니다.
그 둘을 가르는 것은 결국 하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 아는가. 흐름과 표류는 거기서 갈린다.